대학살속에 살고 있는 당신에게

by 정희주

"노년은 대학살이다."

필로스 소설 <에브리맨>에 나오는 표현이예요. 아버지는 고통도, 슬픔도 아닌 저항할 수 없는 학살속에, 그저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대 학살속에 계셨던 건가요? 이 충격적 표현을 보며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어요. 아버지의 고통은 제가 감히 아는체 할 수 없는 것이더군요. 아버지는 감히 동정도, 위로도 할 수 없는 곳에 계시더군요.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아버지의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먼저 자신의 변화를 눈치 채셨죠. 생각처럼 사고기능이 되지 않자 저와 대화를 멈추고는 혼자 방으로가서 얼굴을 부여잡고 흐느껴 우셨어요.


고흐가 그린 그림속 노인처럼..

고흐-노인.jpg 빈센트 반 고흐 <울고있는 노인 >, 1890, 80 x 64 cm, 캔버스에 유채


제가 들을까봐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얼굴을 가린채 그렇게 숨죽여 우셨어요. 고흐는 얼굴을 파묻고 있는 노인을 보며 운다는 것을 알아 차렸네요. 저는 당신의 흐느낌을 보고 알았어요. 하지만 그 눈물을 보고도 차마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어요. 아버지 스스로의 그 무너짐에 저는 무서웠던 것 같아요. 저의 아는척이 아버지께 더 상처가 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벽 뒤에서 저는 모른척 하고 가만히 서 있었어요. 당신이 눈물을 닦고 나올때까지, 숨죽이며 당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수분이 지난 후 당신은 눈물을 닦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오셨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 아버지는 대학살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계시는군요.

이 처참함 앞에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당신을 구할 수도, 당신과 함께 그 학살속에 참전할 수도 없는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당신의 고통앞에 그저 마른눈물을 흘릴뿐.

당신은 애써 아무렇지 않게...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당신의 딸 또한 같은 전쟁터에 끌어 들이고 싶지 않으셨던거죠.


쏟아져 내리지 않기 위해 간신히 자신을 붙잡고 계시다는것을 알고 있어요.

간신히 애써 자신을 부여잡고 계시다는것을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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