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너무... 늦었어요

by 정희주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1주일 전 우린 병원에서 만났어요. 늘 하는 피검사를 했고 암수치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지만 신체에 큰 영향을 주는 단계는 아니라는 확인을 받죠. 아버지는 피곤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셨는데도 댁에 돌아가시는 길에 독감예방접종을 하겠다고도 하셨어요. 며칠 쉬시다가 접종하셨으면 했지만 담당 교수도 괜찮다는 소견을 주셨기에 알아서 하겠다고 하셨죠.


이런저런 약간의 실랑이가 잦아들 무렵.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네가 경기도로 이사를 가면 병원 오기도 쉽지 않겠구나" 하고요. 지하철 시간으로 보면 30분 정도만 더 가는 거라서 괜찮다고 안심드리기는 했지만 딸이 병원을 오가며 고생하는 것도 싫었고, 경제적으로 버거웠던 15년간의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이사를 가는 것이 더 속상하셨던 것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를 능력 없는 나약한 사람으로 보는 것만 같아서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야"라고 쏘아붙였어요. 그런 까칠함이 저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요. 혹시라도 내가 부족한 자식으로 비칠까 봐, 오빠보다 못한 사람이 될까 봐, 늘 전정 긍긍하며 저를 채찍질하고 담금질했기에, 누군가의 작은 자극인 한 스푼만 들어와도 예민함에 화들짝 경기를 해버리곤 했으니까요.


정신을 차린 후 전 가만히 "아빠 저 걱정하지 마세요" "왕복 4시간도 출퇴근했었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난 시간 부자잖아."라고 말씀드렸죠. 아빠는 가만히 하고픈 말을 삼키셨어요. 이 대화가 우리의 온전한 마지막 대화가 되었네요. 그 대화 후 아버지를 지하철 입구에서 배웅해 드리고 아버지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 제게 인사를 하셨죠. 우리의 인사는 늘 그랬죠. 돌아서면 있을까. 아직도 날 지켜볼까. 그렇게 머리가 작게 보일 때까지 손인사를 마치고 헤어졌어요.


그리곤 주말 아빠가 건강이 썩 좋지 않다는 연락을 오빠로부터 받게 되었어요. 감기에 걸린 것 같아서 동네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길가 벤치에 앉았다가 돌아왔는데 길에서 몇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했죠. 며칠 전 병원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에 좀 더 지켜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전화가 왔어요. "밥을 못 먹겠다" / "반찬이 없나요?" / "아니 먹을 건 많이 있어. 그런데 먹을 수가 없어... 나 이제 곧 죽을 것 같다." / "아... 어쩌죠. 제가 지금은 바로 못 가요.... 아니 아니에요. 갈게요. 혹시 너무 힘드시면 응급실로 들어갈까요?" 왜래 진료는 예약이 없으면 진료를 못하니 응급실로 가보자고 말씀드렸더니 아빠는 "아니다. 괜찮다. 내일 오너라"하시며 전화를 끊으셨죠. 그날 하루 종일 불안과 걱정이 몸을 떠나지 않았어요. 일을 끝낸 후 전화를 드렸더니 계속 먹통이기만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전화가 안 되는 날은 오빠에게 부탁해서 집에 가보기도 하고, 경비실을 통해서 연락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별일 없었던 것이 확인되었기에 '이번에도 주무시느라 전화를 못 받으시는 거겠지'라고만 생각해 버렸어요.


아침에도 계속 전화가 불통이고 현관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죠. 외출하셨던 걸까 잠깐 생각했지만 안에 걸쇠가 걸려서 문이 열리지 않았어요. 벌벌 떨며 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119에 전화할까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오빠는 열쇠집에 우선 연락을 해보자고 했었죠. 이전에도 집안에서 인기척이 없어서 열쇠집 신세를 여러 번 진 적이 있었고 다행히 그때마다 별일이 없었음을 확인했었으니까요. 어쩌면 그런 몇 번의 일들이 우리를 더 안일하게 한 건지도 몰라요. 열쇠 아저씨도 안에서 걸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며 문을 해머로 부수었어요.


쾅! 쾅! 쾅!.........

거친 소음이 아파트 단지를 울리고 있는 순간에도 집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미동도 느껴지지 않아 너무 불안했어요. 부서진 문을 지나 거실로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아빠를 발견했어요. 사선에 계신 아버지를...


"아...............

제가............

너무.............

늦었어요....."


SE-08235a07-5d5f-45fc-85eb-594ec4bf1b5b.png?type=w773 에곤 쉴레 <늦가을의 나무>, 1911, 42 x 33.35 cm, 캔버스에 유채


많은 것들이 늦었어요.

어제 왔었어야 했는데.

좀 더 일찍 이 편지를 전해 드렸어야 했는데.

좀 더 많이 사랑한다 말했어야 했는데.

좀 더 자주 안아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늦었어요.

제 아픔 닦아내느라, 내 고통에 집중하느라 제가 아버지를 그대로 봐드리지 못했어요.

제가 너무 늦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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