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마지막 날 밤

by 정희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날 우리 조금 분주했어요.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결정하기에 앞서서 연명치료에 대해 결정해야 했거든요. 의사는 친절하지만 덤덤하게 연명치료의 장단점을 설명해 주었어요. 연명치료를 하게 되면 산소와 영양소가 강제 주입되기 때문에 얼마간 숨을 더 쉬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어요. 그러나 아버지 상태는 매우 노쇠하시어 연명치료를 통해 이전 생활로 회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 의사의 설명이었고, 또한 임종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의 지점이었어요. 하지만 오빠와 난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즉시 아버지는 중환자실 또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게 될 예정이었어요.


오빠는 한동안 고민했어요. 무엇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고요. 저는 마치 미리 생각이라도 해 둔 듯이 연명치료를 거부했어요. 몸에 기계장치를 끼고 외롭게 하루 더 사시는 것보다 가족들과 1시간을 더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왜 그렇게 단호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엄마의 일이 교훈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엄마는 마지막 날 기계장치를 잔뜩 끼고 돌아가셨잖아요. 그런 상태였는데도 우리들은 그날이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고 이별할 준비를 하지 못했었어요. 병원에서 치료받고 계시니 몇 년은 더 사실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죠. 그때는 수학적으로 '얼마나' 더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아니에요. 단 1시간이라도 '어떻게'가 더 중요했거든요. 아버지와 그렇게 단시간이라도 함께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 어떻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요. 오빠에게 계속 대답을 강요할 수 없어서 제가 먼저 보호자 사인을 했어요. 오빠는 마음에 준비가 되면 그때 최종 사인을 하고 제출하도록이요. 아버지와 관련된 중요한 일이지만 아버지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렇게 당사자가 결정할 수 없는 일들이 병원에서는 많이 일어나네요.


그리고 늦은 오전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했어요. 이곳은 참 따뜻하네요. 햇살도 비치고요. 의료진들도 많이 친절해요. 마지막 순간에는 모두 이렇게 너그러울 수 있는가 봐요. 어떤 간호사는 제 눈을 보며 같이 눈물도 흘려주셨어요. 그 눈을 보며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내 고통을 알아주어 고마워요. 당신을 고통스럽게 해서 미안해요' 하고요.


프란시스코 코야 <오수나 공작 가족의 초상>, 1788, 캔버스에 유화



성 가족.jpg 오라초 젠틸레스키 <이집트 피난길에서의 휴식>, 1628년, 158X225,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병동에 들어간 날 저녁(혹시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 밤)에 영정사진을 챙기러 집에 간 오빠는 가족 앨범을 가져왔어요. 우리는 사진첩을 보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죠. 아버지가 저를 유독 아끼셔서 오빠가 질투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요. 오빠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전해 주기도 하였지요. 가족이 함께 강가에 놀러 갔던 이야기 등등 잊고 지내던 순간들이 떠올라요. 그리고 내가 몰랐던 많은 면들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네요.


앨범 속에는 고야는 <오수나 공작 가족의 초상> 정형화된 가족화예요. 요즘에 사진관에서 찍는 가족사진과 비슷하게 보이죠? 예쁘고 옷을 차려입고 정갈하게 서 있어요. 이 가족에게 있을 시련이나 일상의 비루함 따위는 보이지 않아요. 어쩌면 우리 가족은 고야의 그림 같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애쓴 것 같아요. 하지만 삶은 저렇게 정형적이지 많은 않았어요.


저는 오라초 젠틸레스키의 <이집트 피난길에서의 휴식>이 좋아요. 예수의 가족을 기른 성화 중 가장 현실의 모습을 반영한 것 같아서요. 인생이라는 전쟁통 속에서 가족을 보살피고 지키기 위해 지쳐 곯아떨어진 늙은 요셉,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젖을 물리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정형화된 가족화의 모습으로 포장할 수 없는, 그래서는 안 되는 우리 진짜 삶의 모습을 닮고 있어요. 이 아버지, 삶의 전쟁 속에 가끔씩 희망을 보셨나요? 때론 따뜻함을 느끼셨나요? 잠깐이라도 달콤한 휴식을 취하셨나요? 삶에서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으셨는지 더욱 궁금해지는 밤이네요.


새벽에 간호사가 찾아와서 의자에 쪼그리고 졸고 있는 우리에게 매트와 이불을 더 주고 갔어요. 친절하신 분들이에요.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우리를 보살펴 주는 이웃들이 여기도 많으시네요. 우리의 밤은 예수를 돌보던 마리아와 요셉의 보살핌처럼, 다정한 이웃들의 관심 속에 깊어 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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