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 그 최선의 숨을 기리며

by 정희주

어제까지는 말씀도 하시고 의식도 있으셨는데 이제는 마른 쉼만 쉬시네요. 물도 삼킬 수 없어서 입이 많이 마르셨죠? 거즈로 적셔 드리기는 했지만 입속이 너무 말라서 하얗게 백태가 올라오더라고요. 어떻게 손을 댈 수도 없고 충분히 적셔 드릴 수도 없어서 참 무기력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날은 손발도 무척 창백해지셨어요. 피가 안도는 것처럼 온도가 차갑고 색도 푸른 청색이 변해가고 있어요. 엄마는 돌아가신 후에도 몇 시간 동안 손발이 따뜻했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하룻밤을 다시 보내고 아침이 되었어요.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어요. 지금 일지 한 시간 뒤일지, 오늘 일지 내일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어요.


오빠와 나란히 앉아서 아버지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 호흡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잠시 멈추는 듯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것을 발견했어요. 간호사를 호출하자 "이제 곧 가실 거예요"라고 말해주네요. 그리고 몇 초 가느다란 숨을 한번 쉬고는 멈추셨어요. 함께 곁을 지키던 간호사가 맥을 확인하더니 조심이 입을 열었어요.


"oo월 oo일 오전 oo시, 임종하셨습니다."


자코메티-장대위의 두상.jpg 자코메티 <장대위의 두상>, 1947, 브론즈, 출처. 루이뷔통 미술관



아버지의 뜨거웠던 삶이 지나가고 있네요. 마지막까지 손발을 차가워지도록 자신의 열기를 다 태우며 가고 계시네요. 마지막 호흡까지 뿜어내고 가시네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 다 하고 가시네요. 아버지는 가끔 못다 한 일들이 있다며 후회된다고 하셨어요. 기타를 배워볼걸, 외국에 한 번 더 나가볼걸, 그런 후회들이 있었죠.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엄마한테 잘해줄 걸, 잘못을 되돌리고 싶다. 좀 더 이해했어야 했는데 하며 잘못한 일들만 찾아 자책하셨죠. 병에 걸리고 나서는 난 곧 죽을 텐데 너희들이 걱정이라며 자식 걱정 손주 걱정을 하셨죠.


그때는 왜 아버지는 후회의 점만 찍으시는지 안타까웠어요. 왜 못한 것만 이야기하 하시는지, 그럴 거면 지금이라도 못한 일들을 하지 왜 말로만 후회하시는지 답답했어요. 알아요 무언가 다시 하기 힘드셨을 거예요. 내 것을 챙겨보지 못하는 사람, 택시도 잘 타지 못하는 사람이 무얼 과감하게 할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불쌍하고 안 됐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일하느라, 돈 버느라 아버지 삶은 어디에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미안하고 불쌍하고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행복하다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짜증 났어요. 아버지의 슬픈 얼굴은 저를 더 슬프게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아버지의 마지막 숨, 그것은 그날처럼 저에게 고통이 되지는 않아요. 고통이 잊혔다거나 희미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아버지는 아버지 삶을 사셨다는 것을 알알게 때문이에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사셨을 거예요. 그래서 그 마지막 숨이 제게 다르게 다가와요. 마지막 숨까지 끝까지 다 소진하고 가셨다는 걸요. 언제나 보였던 그 성실함으로 그렇게 마지만 숨을 쉬고 가셨다는 걸을 알게 되었어요.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jpg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1960, 출처, 위키아트



요즘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 고민해요. 좋은 삶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일까?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그런 1차적 욕구에만 흐르는 삶은 아닐 거예요. 그렇다고 누군가를 위해 나를 내던지는 맹목적 희생도 아닐 거예요. 자신의 책임을 아는 삶, 자신의 실존에 깊게 뿌리박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욕구를 찾는 삶이 좋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에 이르고 나자 아버지의 삶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거나 혹은 평범해서 시시하거나 하는 마음이 사라졌어요. 오히려 실존에 뿌리박고 큰 나무가 되려고 버텨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깊게 뿌리박고 계셨기에 어딘가로 도망가기는 아마 어려우셨겠죠. 조르바처럼 바람처럼 살기는 불가능하셨겠죠. 그래서 후회도 되고 아쉬움도 많으시겠죠. 하지만 그건 그대로 두어요. 못한 건 못한 대로 그대로 두어요. 저는 아버지가 한 것만 기억할게요. 아름드리나무가 되어주신 것, 사랑으로 바라봐 주신 것,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열심히 한걸음 내딛고 숨 쉬며 사셨다는 것 그것을 기억할게요.

내게 기꺼이 내어 주신 것 그것을 소중히 간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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