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집을 정리하게 되었어요. 2년 만이에요. 베란다를 가득 채웠던 화분은 오빠가 주말마다 물을 주며 키웠어요. 아파트 화단에 내려놓을까, 이웃에게 나눔 할까 고민했지만 오빠는 키우던 화분을 낸 놓기가 걸렸던 것 같아요. 오빠가 매주 한 번씩 아빠 집으로 가서 물을 주며 가꾸다가 버티다가 결국 시들었고 그 화분이 죽음으로써 집을 팔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죠.
아버지 집을 매수한 사람은 어떤 신혼부부예요. 집이 왜 2년간 비워있었는지 사정을 듣고서는 부부애가 좋았던 분들인 것 같다면서 좋은 기운이 있는 집이라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참 고맙지요. 이전 주인의 삶을 이해해 주고 좋은 의미로 생각해 주니 말이에요. 그리고 새 출발을 하는 분들이 오신다고 하니 저도 집을 정리하는 마음이 한결 좋아요.
안방에서 주무실 때 들으시던 카세트 겸용 CD플레이어가 눈에 띄었어요. 서랍을 열어보니 어린 시절 오빠와 내가 책을 읽고 노래 부르던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가 들어 있네요. 주무실 때, 혼자 계셨을 때, 옛날 생각이 났을 때 이 테이프를 틀어 놓으셨나 봐요. 이렇게 외로운 밤을 보내셨군요.
다른 서랍에는 예전 직장새왈 하실 때 쓰던 수첩들이 한 뭉치가 나왔어요. 예민한 회의를 앞두고 계셨는지 하고 싶은 말씀을 미리 꼼꼼히도 적어 두셨네요. 아버지는 직장에서도 엄청나게 꼼꼼한 분이셨나 봐요. 엄마와 아버지의 투병일지도 찾았어요. 매일의 혈압, 혈당, 항암수치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어요. 그렇게 매일을 기록하며 사셨군요. 그 매일의 숫자들로 아버지의 실존을 기록한 것이네요.
이미 중요한 물건은 챙겨두었는데도 남은 물건들을 선뜻 버릴 마음이 생기지가 않네요. 버리려고 하니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네요. 그래서 옷장 속의 옷들을 꺼내 옷감을 조금씩 잘라냈어요. 추억을 채집하는 마음으로 옷감을 조각조각 내었죠. 단추도 몇 개 뜯어 내고요. 유독 체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체크무늬 셔츠를 많이 입으셨죠. 제가 사드린 옷들도 다시 들춰보게 되었네요. 좋아하시던 양복도 옷장 하나를 차지하고 있네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입으시던 낡은 파자마도 있고요. 아버지 옷을 보면서 저는 또 한 번의 긴 시간여행을 했네요.
이제 되었어요.
남겨야 할 물건은 가방 하나만큼의 크기로 줄었어요.
그리고 유품정리 업체를 불렀어요.
이삿짐 차량이 짐을 가득 싫고 차가 떠나가요.
한 시절이 가고 있네요.
한 시절의 삶이 떠나가고 있네요.
짐이 모두 빠진 공간에 달빛이 찾아왔어요.
언젠가 이 공간에도 새로운 기억이 채워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