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을 정리하던 중 엄마의 유품함을 발견했어요. 돌아가시고 얼마 후 엄마 짐을 한 박스 정도 남기고 다 버려야겠다고 하셨죠. 남겨진 그 함에는 여러 물건이 들어 있었어요. 엄마가 쓰던 휴대폰, 안경, 니트 한벌, 화장품, 그리고 신발과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편지에는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저주하고 있던 그날의 사건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목이 메도록 울며 부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 있었죠.
아버지가 후회하는 하나의 일이 있었죠. 엄마가 입원하셨을 때의 일이라면서 제게 말해주셨어요. 소뇌의 기능이 악화되어 말이 어눌해져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안 않고 엄마는 혼자서 수저를 들 수도 없는 상태였죠. 이런 엄마에게 아빠는 손수 밥을 떠 먹이면서 간호를 하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밥을 먹지 않겠다면서 입을 꼭 다무셨어요. 아버지는 애타타면서도 화가 난 나머지 엄마 얼굴에 국을 퍼부었다고 말하면서 꺼이꺼이 우셨어요. 그리고 즉시 후회하면서 엄마와 부둥켜안고 엉엉 우셨다고 하셨어요. 더욱 속상한 것은 엄마가 아빠의 성의를 무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 후라고 하셨어요. 소뇌의 기능이 퇴행되면서 음식을 삼키는 연하기능까지 축소되었던 것이에요. 삼킬 수가 없는데 자꾸 음식물이 들어오니 그 임식을 뱉거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아버지는 자신이 정말 큰 죄를 지었다면서 딸 압에서 마른 울음을 지으며 꺽꺽 되셨죠. 그날의 미안함과 죄책감이 이 편지에 들어 있네요.
아, 아버지. 용서를 빌고 싶었던 사람은 엄마였었던거죠? 언젠가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70이 되어서 천주교 신자가 되신 아버지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면서도 천국에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며 걱정을 하셨어요.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연옥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네 형제와 화해하고 와야 한다고 한단다. 그런데 그 형제가 이 세상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슬픈 눈망울이 잊히지 않아요. 아버지가 그토록 용서를 빌고 싶었던 사람은 어머니셨군요.
아버지가 엄마에게 직접 용서를 구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 일로 긴 시간을 괴로움에 보내셨어요. 어머니도 아버지가 계속 고통 속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이제 그만해요. 자신을 그만 다그쳐요. 이제 그만 쉬어요."라고 말해주지 않으실까요.
그리고 또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어요. 성경책 속에 들어 있는 편지 한 통. 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지신 후 이웃의 신고로 구급차를 타고 입원을 하신 적이 있으셨지요. 인간의 얼굴을 한 천사들을 만나서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던 일이 있었어요. 그때 퇴원하는 날 제가 아버지께 드렸던 편지가 들어 있네요.
제가 그 편지를 드렸을 때 아버지는 받기 싫다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돈봉투라고 생각하셨지요? 떠 안기듯 편지를 두고 나왔고 아버지 짐을 옮기던 오빠가 그 편지를 읽어 주었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그 편지를 매일같이 읽으시던 성격책에 책갈피처럼 꽂아 두었네요. 이 작은 편지가 아버지에게 위안이 되었던 걸까요? 어두운 방에 들어온 한 때의 빛줄기가 되어주었기를 간절히 바라보아요.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썼던 아버지, 저 역시 부칠 수 없는 회한의 편지를 쓰고 있어요. 아버지의 편지가 엄마에게 직접 당도하지는 못했지만 그 편지는 저를 울리고 있고, 그 울림이 이렇게 아버지께 편지를 쓰게 만들었어요. 이 편지는 또 다른 어딘가로 가서 또 다른 가족을 울리겠지요. 그렇게 아버지의 편지는 엄마에게 더 가까이 가까이 울림으로 당도할 거예요. 그렇게 아버지의 못다 한 삶, 제가 이어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