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1) 카드 내역서가 알려준 아버지의 하루

by 정희주

아버지,


그날은 아버지가 없는 빈 집을 정리하러 간 날이었어요. 우체통에는 찾아가지 않은 밀린 우편물들이 제법 쌓여 있었어요, 그 우편물들을 뜯어보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평소라면 특별할 것이 하나 없는 카드내역서 였어요. 그 내역서에는 반찬가게, 식당, 병원, 약국이 대부분을 차지했어요. 돌아가시기 전 한 달 치의 내역서를 보며 아버지의 발걸음을 카드내역서의 날짜별로 따라가 보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어요.


고흐_구두.jpg 고흐 <구두>, 1886, 45 x 37.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그날 그 식당에서는 무얼 드셨나요? 무슨 맛을 느끼셨나요? 맛이 잘 느껴지지도 잘 삼켜지지도 않는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살이 있는 것에 감사함일까요 혹은 비루함이었을까요? 억지로라도 한 그릇 해치웠다는 의무감일까요 혹은 무의미함이었을까요?


그날 반찬가게에서는 무엇을 사셨나요? 매번 사는 같은 메뉴에 신물 나지는 않으셨나요? 아니면 무엇이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줄까 하며 기대를 가지셨을까요?


저와 함께 있었던 날의 기억도 있네요. 병원진료를 마친 후 약국에서 쇼핑백 하나 가득 약을 받아 들고 헤어진 날이네요. 몇 번을 뒤돌아 보며 손인사하며 헤어진 바로 그날이네요.


쓰러지시기 전날에도 병원에 가셨었네요.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들었었는데 병원에 오는 길에 벤치에서 1시간을 넘게 쉬다가 잠깐 졸았다고도 들었어요. 그날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어쩌면 그날 증상이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너무나 보고 싶고 한편 죄책감이 밀려와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내가 조금 빨랐더라면 어땠을까? 연명치료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이랬더라면 모든 것들이 후회로 밀려와요. 나를 책망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그리움을 그리움으로만 느끼기엔 제가 잘못한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 죄책감을, 이 회한을 어떻게 떠나보낼 수 있을까요?

지금은 슬픔과 함께 뒤범벅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아. 아버지,

아버지도 엄마에게 이런 마음이셨던 걸까요? 이 어쩔 수 없는 통증 때문에 그렇게 자책하셨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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