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을 하며 아버지에 대해 너 많이 알게 되었어요. 특히 아버지와 저와의 관계에 대해 말이죠. 아버지를 찾아오는 손님과 친척들은 제게 온통 아버지가 저에 대해 한 말에 대해 이야기하셨죠. 전 아버지가 절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엔 아버지는 제가 거짓말 잘한다면서 제 말을 잘 안 믿으셨었죠. 사실 부모님 지갑에서 돈도 좀 훔치고 집에 있는 술도 몰래 홀짝 마시고 공부하러 나간다고 하고 땡땡이도 많이 치기는 했었지만, 주로 제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저를 많이 나무라셨기에 억울한 날이 많았어요. 그것 역시 제가 확대 재해석한 저의 기억의 오류이겠지만요. 접대용으로 집에 두던 담배가 사라졌을 때 저를 의심하던 일, 남자를 만나러 다니는 거 아니냐며 10대에게 연애는 안된다고 하셨던 일 등이 기억이 나네요. 저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고 저를 구속하려고 한다는 생각에 유년시절엔 참 많이 답답했어요. 그리고 20살이 넘어서는 아버지처럼 잘하고 싶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었죠. 그런데 아버지는 제게 잘한다는 말 한마디 시원하게 하신 적이 없어요. 늘 걱정과 저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 같아요. 전 늘 억울하고 그래서 더 오기를 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혼자 계실 때 가끔 아빠를 찾아주던 친척언니게 제게 말해주었어요. "아빠가 널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어. 그런데 결혼 후 자기 뜻대로 못 사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시더라." 아버지는 제게 이런 내색 한번 없으셨잖아요. 제가 사표 냈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흔들리는 제 눈빛을 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으셨어요. 저는 그게 저에 대한 못마땅함인 줄 알았어요. '네가 거기 까지지. 별 수 있냐'라는 눈빛으로 읽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속상할까 봐 제 결혼생활은 일체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거였어요. 가부장제의 권능은 아버지도 말릴 수 없는 영역이었던 거겠죠.
오빠와 어릴 적 대화를 하다가 오빠는 제가 부러웠다고 하더라고요. 아빠가 저를 예뻐하셨다고요. 결혼을 했을 때도 너무 아까워하셨다고 들었어요. 물론 제 결혼을 흔쾌해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것은 우리 부부 모두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 더 잘 살려고 노력했어요.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갈등하고 싶지 않았고, 돈도 잘 벌어서 집도 사고 아이도 낳고 안정되게 살고 싶었어요.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괜찮은 딸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결혼 후 제 삶은 안타깝게도 인정투쟁의 역사였어요.
하지만 이제 어렴풋이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인생의 중요한 기로마다 제 삶에 관여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저를 믿으셨기 때문이겠죠? 제가 감수하고 살아 낼 것이라는 것을 믿으셨기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내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겠죠?
전 늦게 알았어요. 처음부터 저를 믿으셨다는 것을요. 그리고 돌아가는 순간까지 저를 믿으셨다는 것을요. 전 너무 긴 시간 의심하며 제게 주시는 믿음을 보지 못했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 헤매며 방황을 했어요. 내가 나를 믿지 못한 어리석음을 안고 살았어요.
그림 속 눈먼 소녀는 보이지는 못하지만 다른 감각을 더 많이 열려있는 것 같아요, 소녀의 무릎에 놓인 콘서티나(concertina·아코디언 모양의 6 각형 손풍금)를 지니고 있는 것을 봐서도 청각이 발달해 있는 것 같아요. 지그시 감고 있는 눈은 주변의 바람소리 새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같고요, 어쩌면 한편에 잡고 있는 동생의 손의 온기와 오른손에 만지작 거리고 있는 풀의 감촉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요.
저도 이제 아버지를 만날 수 없지만 저의 오감을 열어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요.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신 그 따스함을 다른 감각을 열여 계속 만나고 싶어요. 그 어린 시절 자전거를 잡아주시던 것처럼, 항상 저 무지개처럼 뒤에 서 계시는 거죠? 아직 거기에 계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