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엄마의 유품상자 속에 아버지 편지를 발견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쓰셨던 편지 속에는 산에 올라가서 소리쳐 보아도, 서럽게 울어보아도 여전히 토해내지 못했던 사무친 그리움과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나의 편지들이 떠올랐다.
내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글을 쓰게 된 것이 아마 8년 전쯤인 것 같다. 아머지는 혈액암 투병 중이셨는데 체력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었고 청력까지 급격히 나빠지셔서 우리의 대화는 늘 소리 지르듯 이루어졌다. 대화 내용이 아무리 따뜻한 관심의 말이여도 소리를 질러야 하는 상황에서의 대화에는 따뜻한 온기가 금세 식어 버리기 일쑤였고 대신 차갑고 날카로운 가시 같은 것이 목구멍을 처박고 가슴에 상처를 내곤 했다.
그 무렵 나는 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를 시작하면서 그림공부를 한참 많이 하고 했을 때였다. 난 아버지께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 옛날 초등학교시절 아버지와 처음으로 가본 미술관에서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그림을 보았던 그날이 생각났다. 마침 그날이 3.1절이던가 광복절 이던가, 국립미술관 관람료를 받지 않고 무료로 개방을 하는 날이었고, 우연찮게 서울을 방문했던 우리는 그 미술관에 들리게 된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히 만나게 된 물방울 그림 한 점. 당시는 누구 그림인지도 몰랐던 그 물방울이 생각났다. 물방울이 구슬처럼 흘러가는 것 같은 묘사가 너무 신기하다며 감탄하던 우리. 내게 첫 그림감상은 아버지와 함게한 그날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고, 아버지에게 내가 좋아하는 그림 이야기를 실컷 들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걷는 것이 힘드셨던 아버지는 겨우 병원 통원차 나들이를 하실 뿐, 전시 감상까지 할 체력이 되질 못하셨다.
그때 문뜩 스쳐간 생각 하나. 명화가 담긴 편지를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과 함께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그 편지를 직접 보내드리지 못했다. 다른 이유로는 편지를 몇 번 보내드리긴 했지만 내가 아버지를 이리 그리워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온전히 표현해 드리지 못했다. 사후에도 그리움이 사무칠 때마다 한통씩 쓰던 그 편지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노트북에 보관되어 있다.
엄마의 유품함에 들어 있던 아버지의 편지를 보자 나도 나의 편지를 서랍 속에 꺼내어 펼쳐 보내고 싶어 졌다.그래서 더는 미루지 말고 노트북 한편에 묻어둔 그 편지들을 이제 하나씩 부치기로 했다. 제사가 끝나면 지방을 태워 날리는 의식처럼 아버지가 계신 곳. 이 세상 어딘가. 아니 이 세상 전부에 공기의 일부가 되어 그리운 이에게 내 마음이 가닿길 바라며 마음을 보내보련다.
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1956년, 종이에 연필과 유채
이중섭에게 그림은 그리움이다. 가족과 함께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했던 이. 가족과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을 많은 그림으로 남겼다.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남자는 한 남자는 상념에 잠긴 듯, 체념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고 여자의 얼굴은 뿌옇게 표현되어 있다. 이젠 여자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 가는 것일지도. 집의 기둥이 그림 중간을 가로막고 있어 여자와 남자의 거리는 더 멀게만 느껴진다.
만날 수 없지만 만나고 싶은 마음, 다 알면서도 져버리지 못하는 마음, 그림으로나마 만나고 싶지만 그 기억마저 희미해져 가는 정막함.
그래도 감히 말해본다.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