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모임을 하던 중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죠. 이웃 간에 주차문제로 분쟁이 생겼다며 해결방안에 대한 상의전화였어요. 기억나세요? 아버지는 적극적인 개입을 하자는 입장이셨고 난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이었어요. 어차피 뒤처리는 제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공연히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셨으면 했죠. 다섯 번을 동일한 내용으로 전화를 주셨고 그때마다 난 아버지 뜻에 반대하는 동일한 답을 드렸어요. 3시간쯤 지났을까.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다시 연락을 해오셨어요. 결국 당신 뜻대로 하셨더군요.
어차피 맘대로 하실 것을 왜 물으셨을까 하는 얄미운 마음도 들었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젊은 시절 대단하셨을 거라며 평을 할 정도로 대놓고 깐깐하신 아버지. 열정적이고 솔직하다 보니 때론 표현이 과하고 직설적이기도 하시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간혹 질문해요. 할아버지는 원래 저렇게 목소리가 크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이냐고... 불행히도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부터 몇 년간 아버지는 불덩이를 안고 사시는 것만 같아요. 아버지는 엄마를 먼저 보내고 쓸쓸한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암진단을 받고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잖아요. 거기다 청력까지 약해지면서 우리 가족의 의사소통은 거의 기차 화통 울림 수준이 돼 버린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그런 엄한 할아버지로만 기억될까 봐 안타깝고 걱정스러워요.
그래서 가끔 잠들기 전 이불속에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어린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해요. 아이들에게 엄마 눈에 각인되어 있는 할아버지의 과거를 그림을 통해 소환시켜서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아버지도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림 속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한 손으로 번쩍 안고 있고 딸은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은 채 장난스레 나무 잎사귀를 만지고 있어요. 어린 시절에 기억하는 아버지는 슈퍼맨 그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6살쯤 아버지는 출장을 가시는 날 슈퍼에 들려 나와 친구들에게 간식을 사주셨는데, 그때 짙은 감색 양복에 007 가방을 든 차림이셨어요. 어린 내 눈엔 그 시절 아버지는 신사다웠고 유능했으며 심지어 유머러스까지 했어요. 그림의 아버지의 표정은 어둡지만 딸은 아랑곳없이 아버지 품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아버지가 처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내게는 그저 든든하고 강한 큰 존재로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결혼 초에 아버지는 사위에게 바쁘게 사느라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별로 없었다며 후회가 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하지만 제 머릿속에는 많은 추억이 담겨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쯤인가, 그림처럼 아버지와 함께 저수지 낚시를 간 기억이 있어요. 10cm도 채 되지 않는 물고기를 잡고서 월척이라며 기뻐했었죠. 단 한 번의 낚시였지만 그때의 공기, 날씨, 주변의 풍경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들이 인상적으로 남아어요. 말없이 낚시 찌를 바라보고 있지만 표정이 없이도 다정함이 느껴지는 <낚시> 그림처럼. 우리가 많은 시간을 함께한 것은 아니었어도 함께한 순간순간이 특별한 사진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결혼 전에 아버지는 나를 앞에 앉혀 두고는 딸과 많이 친하지 않은 것 같다며 서운해하셨죠. 아마 아버지는 드라마 속에 나오는 부녀관계를 꿈꿔오셨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따로 살면서도 결혼 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같아요. 그동안 잘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때론 버겁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내 기억 속 앨범을 열어보곤 해요.
나의 기억의 앨범 속에는 모네의 <첫걸음마> 그림에서처럼 나의 처음을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리고 넘어질 때는 같이 안타까워하셨죠. 비록 따뜻한 말고 표정으로 표현해 주신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항상 두 팔 벌려 나를 향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요.
내 기억 속 앨범은 어느 명화첩보다도 아릅답다워요. 명화 속 한 장면이 특별한 날을 그려서가 감동적인 것이 아니듯, 우리의 기억 속 시간들도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서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있었기에 명화만큼 아름다운 것 같아요.
아버지가 힘이 세거나 멋져 보여서만은 아니에요.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일을 하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인 것이죠. 그저 나의 아버지라서 언제나 반갑고 좋았어요.
언제나 나를 그렇게 반겨주셨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