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퇴사를 한 후 남편의 외벌이 수입만으로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녹녹하지 않네요. 기존에 맞벌이로 살았던 생활 수준을 갑자기 반으로 줄이기가 쉽지가 았았어요. 일을 할 때는 바빠서 제대로 여행도 못 가고 가족들과 보낼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대부분 소비를 통해 자유를 느끼고 사랑을 확인하곤 했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소비를 할 때 필요한 지출인지를 꼭 확인해요. 수입이 한정되다 보니 비용관리라도 해야겠더라고요. 한심한 말이지만 이제야 제대로 살림이라는 것을 하는 것 같네요.
7살 때쯤이었을까요. 엄마와 시장에 갔다 돌아온 후 얼굴에 골이 잔뜩 나 있는 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었죠. 시장에 갔다가 구경만 한다고 약속하고는 들린 장난감 가게에서 정말 제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던 거예요. 인형 놀이를 할 수 있는 2층 침대 장난감이었는데 너무 멋있어서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그 당시 집에 장난감이란 것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잖아요. 저는 운이 좋게도 종이 인형이 아닌 속칭 '마론'인형이라 불리는 플라스틱 인형이 하나 있던 차였죠. 그 침대만 있다면 저에게는 너무나 환상적인 나만의 세계가 완성될 것이라고 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장난감 가게에서 엄마에게 떼를 쓰고 졸랐지만 아빠도 아시는 것처럼 엄마의 단호함을 꺾을 수 없었죠.
시무룩한 제가 안쓰러웠는지 저에게 이유를 물으시고는 가격이 적당하면 사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는 그 장난감 가게 이름이 무언지 알아내셨죠. 그리고는 장난감 가게 전화번호를 전화번호부에서 찾아 전화를 걸었고, 그 침대가 얼마인지 물으셨어요. 그때 아빠가 전화번호부를 찾는 그 순간, 그리고 전화를 걸며 통화하는 그 목소리,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전화를 끊으시고는 저를 가까이 앉히고는 말씀하셨어요.
“그 침대 가격이 3,000원이라고 한다. 1,000원 정도면 사주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서 어렵겠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당시 자장면 한 그릇에 500원도 안 하던 시절이었는데, 장난감 가격이 3000원이라는 사실에 전 너무나 놀랐어요.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죠. 하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높은 가격에 기죽었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제 속상한 마음을 알아봐 주시고, 전화를 걸어 상황을 살펴주신 그 노력이 너무나 감사했어요. 그 관심 만으로도 제 소비욕구는 사라졌어요. 꼭 무엇을 받지 않아도 마음이 전달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던 것 같아요.
위 작품은 칼 라르손이라는 작가의 자화상과 딸의 그림이에요. 스웨덴 출신인 이 작가는 자신의 가족들 특히 딸의 모습을 작품에 많이 담았어요.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 어린 시절이 많이 떠올라요. 비롯 내 손에는 이 그림 속 여자아이처럼 화려한 드레스의 장난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받은 사랑의 빛깔은 이 그림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색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얼마 뒤 우리 부부는 차니의 성화에 못 이겨 마트에서 2시간가량 줄을 섰어요. 터닝메카드 장난감이 몇 개 매장에 들어온다고 하네요. 돗자리를 깔고 앉아 줄을 서며 우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 있어요. 이게 이럴 일인가 하고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건 이럴 일인걸요.
추신)
이 편지를 쓰고 난 후 7년 정도 흘렀고 차니는 중학생이 되었어요. 아이들의 소비욕은 점점 더 커져서 엄마 지갑이라도 가져갈 참이에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흙장난을 치며 놀고 언니 오빠의 옷을 물려 입던 저의 세대와는 또 다른 경제관을 가진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이 세대차이를 다른 나라 출신의 가족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개발도상국 출신인 부모와 선진국 출신의 자녀들이 한 집에 산다고 말이죠. 아버지는 후진국 세대였으니 지금의 천태만상을 보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지네요. 요즘 것들 못쓴다고 하실까요, 아니면 '옛다' 하며 용돈을 투척하실까요.
요즘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돈에도 마음을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