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 약속을 저버리고 엄마가 말없이 3시간 가출(외출)하신 사건 기억하시나요?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다며 난감해하셨죠. 온 가족이 어머니가 주로 가시던 동선을 따라 동네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백화점 앞 벤치에서 엄마를 찾게 되었죠. 당시 엄마는 처음 만남 사람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억울함을 말씀하고 계셨어요.
아버지가 성당에 다니시면서 모임활동을 하시느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투병 중이시던 엄마가 많이 서운해하시며 이건 배신이라면서 분노해하셨어요. 엄마는 소뇌위축증으로 인해 걷는 능력, 말하는 능력 등 운동능력이 조금씩 사라지는 와중에서도 얼굴에 온 근육을 움직이며 답답함을 표현하셨었죠. 그것도 가족 행사가 있는 날, 엄마의 분노는 더는 참지 못하고 터지셨었죠. 자식들 눈치도, 며느리도, 사위 눈치도 이젠 난 보지 않겠다는 강한 표현이었어요.
그날 저녁에 되어서야 강화로 여행을 갔고, 여행지에서 간신히 저녁 한 끼를 먹을 수 있어요. 엄마는 내가 아는 한 처음으로 술을 드셨고 약간 취하셨죠. 엄마를 지켜보던 아빠는 난처함, 미안함 그리고 이렇게라도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셨어요. 저도 그날 엄마가 속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어요. 엄마는 그토록 속마음을 열어보니지 못하고 사셨나 봐요.
다음날 아침 좀 일찍 일어나 숙소 옥상으로 나갔는데 그곳에 아빠가 계셨어요. 이 그림처럼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았네요.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커피 한잔 하면서요. 뭉게구름이 가까이 내려온 듯했지만 구름들 사이로 해가 곧 비쳐들 것 같았고 태양빛이 나오기 직전에 무지개가 떠올랐어요. 너무나 가깝고도 선명하게 다가온 무지개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무지개는 평화와 풍요, 희망을 상징한다고 해요. 하지만 그날의 여행이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 되고 말았죠. 그날의 무지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준 것일까요? 행운 같은 모호한 기쁨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날의 무지개는 제게 추억을 주었어요. 선명하게 남겨진 확실한 기쁨이에요. 엄마의 진짜 마음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 엄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 엄마의 이야기를 아버지가를 비롯한 온 가족이 온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어요.
우리는 엄마의 병환, 죽음 등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고만 생각했지만 구름뒤에 드리웠던 무지개는 한동안 잊고 살았어요. 비 온 후 모습을 드러낸 무지개. 그 무지개를 선선히 다시 되새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