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달 심리상담
“당신이 뭔가 잘못하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서 학대받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그러니까 과거를 잊고 사랑받고 살아라.”
출처, MBC <킬미힐미> 사이트
MBC 드라마 <킬미힐미>에서 도현이 가정폭력 피해자 리진에게 한 말이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가슴이 뭉클해져서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는 드라마 속 도현은 여러 개의 인격을 갖고 있다. 장애의 원인은 대부분 아동기의 외상 경험과 관련돼 있다.
아픈 기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다른 인격을 만들어낸 것이다.
출처, MBC <킬미힐미> 사이트
도현 안에는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신세기, 폭탄 제조범 페리박,자살을 꿈꾸는 요한과 그의 쌍둥이 요나, 어린 아이 같은 나나, 리진의 아빠인 X가 있었다.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조각내버린 도현이 숨겨놓은 과거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모습은 장기간에 걸친 상담과정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억압해두었다가 성인이 되어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때에 일어난다.
비를 맞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묻어둔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옆집 부모가 자녀를 심하게 야단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해나가 그랬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밤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평생교육원에서 가족치료를 공부하며 가계도를 그리는 중 가슴 통증이 온 것이다. 해나의 엄마는 그녀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갔다.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아빠 때문에 고등학교 중퇴 후 보조미용사로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엄마를 대신해 동생까지 돌보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야간대학교도 졸업한 그녀는 이제 가정을 꾸려 아이도 낳고 삶의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마음이 아파올 줄은 몰랐다.
“아빠에 대한 미움이 올라와 견딜 수가 없었어요. 술 마시고 퍼붓던 욕설, 어머니가 맞으면서 내지르던 비명이 불현듯 떠올라 온몸이 저려오더라고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제야 그때의 기억이 이토록 강하게 올라오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보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들을 꽁꽁 숨겨두고 지낸다. 그러다 갑자기 과거의 문이 열리면 혼란스러워한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 같다며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이란 것도 견딜 수 있는 수준에 오른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에는 제대로 마주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젠, 힘겨웠던 시절을 감당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기에, 숨겨두었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드라마 〈킬미힐미〉에서 도현의 숨겨진 인격들이 나타난 것에 이유가 있었듯, 해나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 것에도 이유가 존재했다. 이때에는 과거의 숨겨진 감정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과거의 사건 자체는 지울 수 없지만 그 사건의 영향력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떻게 버텨 왔을까 싶을 정도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폭력적인 부모들이 밖에서는 ‘착하고 유순한 사람’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즉, 외부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억압했던 분노를 어린 자녀들에게 터트려온 것이다. 분노는 아래로 흐르고 폭력은 반복된다.
안타깝게도 학대를 받는 어린 아이들은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자신이 모자라고 나쁜 아이기 때문에 학대받은 것이라고 여기며 자라났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힘들었던 기억에 대한 봉인이 풀리며 부모에 대한 억압됐던 분노가 느닷없이 찾아온다.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더 이상 착한 아이가 아닌 진짜 자신의 목소리로 억울함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출처, MBC <킬미힐미> 사이트
드라마에서 도현의 아버지는 도현에게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도현은 끝끝내 용서치 않았다. 과거에 부모가 저지른 행동을 용서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화가 났다는 이들이 생각났다.
"당신들이 대체 뭘 안다고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원망과 함께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속상함만 커져갔다고 했다.
부모가 용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용서에 이르는 길에는 길고 긴 고통스러운 시간이 존재하지만, 부모가 준 상처를 봇짐마냥 붙들고 있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과거를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들과 받을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면서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도현이 과거의 인격들을 하나하나씩 만나서 안아주었듯
과거의 슬퍼하는 내면아이를 안아주어야 한다.
부모가 나를 따뜻하게 공감하고 수용해주지 못했지만
현재 어른인 나는 과거의 내면아이를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다.
어린 시절 어떠한 학대를 받았든, 어떠한 말을 들었든, 그건 단지 부모의 소리일 뿐이다.
절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부모가 준 생각들과 태도들은 부모의 것으로 여겨버리고, 이제는 내가 나를 안아줘야 한다.
당신은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책 <나라도 내편이 되어야 한다>의 일부를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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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현은 마음달 심리상담의 13년 경력의 심리학회 상담 심리 전문가 및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두려움 너머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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