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달 안정현 Nov 10. 2018

이번 생은 망했다면 소소한 즐거움을

마음달 심리상담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이다. ‘이생망’을 말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말은 죽어라 노력해봐야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비정한 세상에서 더 이상 기대나 희망을 갖기가 어려운 세태를 반영한다. 사람들은 도전해서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라고 말하지만 꿈같은 소리다. 대부분의 사람은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벅차다. 그렇다면 이대로 끝일까? 행복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걸까?


퍼펙트하지 않은 인생


영화 〈어 퍼펙트 데이〉를 보면서 이거 완전 ‘이생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영화가 어찌나 지루한지 보다가 졸기까지 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는 ‘국경 없는 의사회’ 출신이라고 했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영화는 이런 삶을 말한 것 같았다.


내용은 단순하다. 우물에 거구의 시체가 빠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우물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우물에서 시체를 빼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체를 꺼낼 밧줄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밧줄을 찾으러 간다. 그들은 밧줄을 구하기 위해 애쓰지만 밧줄을 구하러 간 곳에서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밧줄 가게 주인은 우물에 빠진 사람은 생전에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밧줄을 팔 수 없다고 한다.


어떤 아이가 집에 밧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지만 밧줄은 미친개에게 묶여 있었다. 그들은 수면제를 넣은 음식을 개에게 먹였지만 개의 정신은 더욱 또렷해질 뿐이었다. 개를 치우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를 찾으러 갔을 때 그들은 밧줄을 찾았다. 아이의 부모가 밧줄에 목이 졸려 죽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를 살리는 아이러니.


다시 우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지뢰가 있을지도 모르는 길들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막막하다. 밤을 새우고 겨우 길을 뚫고 나가서 거구의 시체를 꺼내는 순간, 유엔군이 나타나서 밧줄을 끊어버린다. 이제 드디어 우물에 가서 시체를 구하고 마을 사람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물을 마시는 그런 이야기를 상상했는데 더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주인공들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성장 스토리는 없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모든 것이 무산됐다.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수많은 비가 내린다. 우물에 물이 넘쳐서 시체가 밖으로 나오고 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원하던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어 퍼펙트 데이 포스터


이번 생은 망했다는 당신에게


생각해보면 인생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은 더 많아지고 실패의 역사는 점점 더 늘어난다. 내가 만나는 이들도 그렇다. 뭔가 대단한 삶을 살지도 못할 것 같고, 이불 킥 하는 날이 많아지고, 나만 부족한 것 같은 날이 아닌 날보다 많다. 새해가 되어 결심했지만 다이어트도, 금연도, 운동도 실패만 반복하는 인생. 그러고 보면 나 또한 세상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글재주도 특별하게 없는 데다 어쩌면 책을 내느라 애꿎은 나무만 죽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성공하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단번에 거절당하기도 한다. 현실은 많은 고통 가운데 있다. 누구나 크거나 소소한 아픔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저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각자의 차를 타고 달려간다. 뜻대로 되지 않아도, 도중에 아픔이 있다고 해도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한다.


소확행, 하루에 적어도 네 개의 즐거움


영화는 지루했지만 내내 농담이 있어 좋았다. 삶은 아주 많은 씁쓸함 가운데 잠깐의 달콤함을 맛보는 건지도 모른다. 이 잠깐의 웃음이 있기에 힘든 하루를 용케 살아간다.


나도 한때 비를 간절히 기다렸던 때가 있었다. 농촌 봉사 활동을 갔는데 심각한 가뭄이었다. 낮에는 봉사 활동을 하고 밤에는 큰 대야에 가득 담은 막걸리를 고무신으로 마셨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면서 일주일이 넘게 봉사 활동을 했다. 그리고 풍물패에게 배운 북을 두드리면서 기우제를 지내며 곳곳을 돌아다녔다. 여전히 비는 오지 않았고 밤새 개구리 소리만 요란했다. 그러다 마지막 날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고 우리는 모두 어깨춤을 추었다. 물론 기우제를 지내서 비가 온 게 아니라 비가 올 때가 되어 비가 왔을 것이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원하던 대학원에 입학하기를, 졸업논문을 무사히 발표하기를, 상담심리 전문가가 되기를, 임상심리 전문가가 되기를, 첫 책이 나오기를, 상담실을 오픈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이뤄갔다.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씩 성취했지만 행복이 막 샘솟지는 않았다.


그때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의 책 《하루에 적어도 네 개의 즐거움》을 읽게 되었다. 말 그대로 하루에 네 가지 즐거움을 느끼라는 것이다. 저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침대에서 아침을 먹고, 고양이 두 마리와 놀며, 신문을 읽는다고 한다.


특별한 처방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불안하고 두려울 때 당신에게 즐거움으로 보상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잘 돌보고, 즐거운 일의 목록들을 작성해서 실천해보자. 물론 불안을 없애고 증상을 사라지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 하루 모든 감각을 열고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 때문에 오늘을 그냥 보내버리지는 말자. 나와의 소통, 자신을 위한 즐거움들이 늘어날 때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 하루 네 가지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1, 2년 꾸준히 해야 가능하다. 인생은 불공평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당신의 삶에 즐거움의 목록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작년 겨울에 시작한 브런치 매거진 마음달의 심리치료 극장이 10월 31일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로 출간되었습니다. 목요일은 sbs 라디오 김창환 선생님이 책 p199-204 서부 아프리카 코티드부아르 에피소드를 읽어주셨어요. 설레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매거진 글은 마지막이네요~

더 많은 내용들은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책으로 봐주시길요^^


자세한 책 소개는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19일 월요일 방배책방에서 출간기념 이벤트있어요. 그때 오세요~




이전 24화 심리학 책 읽어도 달라지지 않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