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달 심리상담
은주는 우울하고 불안해서 잠을 이루기 힘들었지만 상담실에 가기는 망설여졌다. 그래서 인기 있는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어떤 문제로 이렇게 힘든지, 어떻게 하면 불안을 줄일 수 있는지 살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심리학 책을 읽어도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고, 계속 부모 탓만 하는 것 같고 말이에요.”
책에서 해답을 찾아도,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는 사람들이 많다.
상담에서도 마찬가지다. Q&A처럼 내담자가 질문하고 상담 사가 답하는 방식일 거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 상담실에 오기까지는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다가 좌절을 겪는다. 그래서 상담사가 자신의 질문에 명확한 해결 방법을 제시할 거라고 믿는다. 게다가 방송에 나오는, 빠른 효과를 보이는 특별한 처방전을 보며 오해는 더욱 깊어진다. 그런 방송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문가들이 내담자의 상황을 시간을 들여 관찰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건 보지 못하고 솔루션만 기억하는 것이다.
심리학 기준에 맞추려 하는 당신에게 이럴 때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심리학자들의 책을 보면서 쉽게 평가하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어떤 말을 곧잘 인용한다. 뭔가 있어 보이는 심리학 용어를 이야기하면서, 타인을 쉽게 평가한다. 즉, 특정한 진단명이나 자신을 잘 이해했다고 여기는 내용은 자신이 믿고 싶은 부분일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는 사람을 그렇게 쉽게 판별하지 않는다. 아울러 석사 과정을 마치고 상담 수련 과정을 이수해 심리학자가 되고 상담을 오랫동안 하면서 든 생각은,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학문도 사람을 이쪽과 저쪽으로 분류하진 못한다.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알코올중독자, 학교 폭력 가해자,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도 상담실에서 만나면 진단명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 마음을 위한 심리 분석
상담에서는 내담자와 상담사가 많은 질문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사람마다 변화 속도도 다르고 상담 목표도 다르기에 상담에는 특정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증상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이도 있고 자신을 좀 더 깊이 분석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내담자에 따라서는 상담이 종결되는 회기수도 다르다. 응급실까지 실려 갔던 공황 증상 내담자가 7회기 만에 증상이 사라지면서 종결되기도 하고, 더 깊은 분석과 변화를 위해 몇 년간 장기 상담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첫 면접 때는 주로 ‘언제 힘든가?’ ‘그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같은 질문을 한다. 아울러 가족 관계, 대인 관계, 발달 과정 등을 묻는다.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인지 도식이 있기에 여러 사람에게 한 가지의 답이 적용될 수는 없다. 상담실에서도 이 사람에게 적용되는 사례가 저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률 스님도 ‘즉문즉답’이 아니라 ‘즉문즉설’, 즉 같이 이야기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내담자 중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다. 다시 말해 상담사보다 지식수준이 더 높을 수 있다. 책을 읽고 문제의 원인을 찾았고 어떤 생각이 잘못되었는지도 아는데 생각의 전환이 어려워 상담실로 오는 것이다. 상담 성과는 상담사보다 내담자의 역할이 크다. 상담에서 내담자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의지가 중요하다. 상담의 주체인 내담자에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담자에게 통찰의 순간이 온다고 해도 변화는 여러 번의 훈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담자들이 변화하는 순간은 생각으로 알게 될 때만은 아니다. “이제 마음으로 와 닿아요.” “뭔지 모르지만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정서적 깨달음도 변화하는 순간이다.
상담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다.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상담사가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내담자가 있다. 때로 상담사는 내담자의 공격성까지도 버텨야 할 때가 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상담사가 내담자를 안아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내담자가 상담사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시간, 서로 갈등하는 시간도 있었다.
내 삶을 증언하는 삶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인터뷰를 엮은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를 보면,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통의 삶을 증언하기 위해 버틴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힘든 시기에 어떤 사람은 견뎌내고 어떤 이들은 무너진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하는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당신이 심리학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어려운 심리학 용어로 삶을 바꾸는 대신 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의 양이 아니라 빈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심리학 책을 읽어서 삶이 달라지지 않고 다이어트, 금연, 운동에 매번 실패해도 괜찮다. 또다시 결심하고 오늘 하루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찾으면 된다. 심리학 책을 읽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 책을 읽고 즐거우면 된다. 자판기에 돈을 넣으면 물건이 나오는 것처럼 심리학이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지만 책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늘려나갈 수는 있다. 고구마 같은 인생에 사이다 같은 답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로부터 지혜를 얻겠다는 마음으로, 단 한 문장이라도 배우겠다는 겸손한 자세로 책을 읽으면 분명 도움을 얻을 것이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며 대충 훑는 식이라면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동화 속 주인공은 괴물을 맞닥뜨렸을 때 여러 조언자들에게 도움을 얻는다. 첫 번째 병을 던져 실패하고, 두 번째 병을 던져 실패하고, 세 번째 병을 던져 겨우 괴물을 무찌른다. 그 수많은 실패들이 모여 결과를 만들어낸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문제투성이다. 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겪고 이겨나간 이야기는 깊은 지혜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별이 되어준다. 그렇게 어둠 속의 아픔들은 큰 빛이 된다.
삶이 아무리 깊고 어두울지라도 그 길을 혼자서 가는 게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오디세이아》의 오르페우스가 힘든 모험을 끝내고 또다시 모험을 떠나듯, 누구나 고통과 아픔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그러나 그 고통 안에 당신에게 필요한 뭔가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고통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 심리학 책은 아리아드네의 실이 되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