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달심리상담
"전작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감독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제작사 대표가 장항준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하며 한 말이다. 그 말의 뿌리는 손익분기점을 넘지못한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영화' 한 편이었다. 2023년 개봉한 〈리바운드〉. 손익분기점 260만 명을 앞에 두고 69만 관객으로 문을 닫은 영화였다.
그런데 임대표는 그 안에서 다른 것을 보았다.
"비극적 역사 속에서도 희망과 삶의 의지를 포착해낼 연출력이 있다고 믿었어요. "
흥행 수치가 아니라, 그 영화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았던 것이다. 결과가 아닌 태도를. 숫자가 아닌 온도를. 그 온도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리바운드〉가 개봉하던 날, 그는 집으로 돌아와 울었다고 했다. *"5년을 준비한 작품이었는데. 농부가 1년 농사를 지었는데 작황이 나쁠 때의 절망과 같았다"*고.
그러면서도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소규모 영화를 연출하고, 각본을 쓰고, 예능에 나가기도 하면서. 감독이라는 본업이 아닌 다른 자리들을 오가며 버텼다. 그리고 데뷔 25년 만에, 첫 천만 영화.
결과가 망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기회를 주기도 한다.
J.K. 롤링은 〈해리포터〉 원고를 12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며 실업급여로 생계를 이어갔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 모든 이야기의 진짜 힘은 '결국 성공했다'는 결말이 아니다. 실패한 시간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지켜냈다는 것. 그 온도가 살아있었기에, 결국 누군가의 눈에 닿았다.
글을 쓰고 상담을 하다 보면,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졸업 작품전 하나에 수백만 원이 드는 줄 몰랐다. 독립영화 한 편에 출연하는 것이 그토록 험한 일인 줄도 몰랐다.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내면서도 오디션을 준비하고,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밤에는 연습실로 향하는 이들을 만나면서 천천히 알아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한나 아렌트는 일을 '노동'과 '작업'으로 구분했다. 노동이 생계를 위한 반복이라면, 작업은 그 일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아를 실현하는 행위다. 예술은 작업이다. 그러나 노동 없이 작업만으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좋아하는 일이 업(業)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마음을 살아있게 하기 위해, 다른 삶을 함께 병행하는 것도 괜찮다. 오히려 그 '다른 삶'이 언젠가 당신의 작품 안에 깊이로 스며들 수도 있으니까.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빛이 난다.
결과가 어떻든 시도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내가 창작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내 안의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떤 작업이 또 다른 실패로 이어진다 해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쓰는 그 모습만으로도 빛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스스로 기한을 정해두는 이들도 있다. "이 이상 힘들면 그만두겠다"고. 그래도 괜찮다. 한때 시도해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삶은 이미 빛났을 테니까.
실패한 것 같아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힘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닿는다.
글쓴이
상담실의 깊은 울림과 일상의 온기를 문장으로 담아내는 20년 차 임상심리전문가 '마음달' 안정현입니다. 다섯 권의 저서에 담긴 진심을 이어가며, 우리 삶에 찾아오는 수많은 회복의 순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나답게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한 분들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포근한 안식처 같은 글을 전하겠습니다. https://linktr.ee/maumdal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