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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승 May 17. 2023

재난 회복 지원 그룹이 필요한 이유

재난 회복 지원 그룹

Disaster Family and Survivor Support Groups


정 찬 승


“이태원에서 집까지 혼자 다리를 끌며 새벽에 두 시간을 걸어왔어요. 너무 서러웠는데 멍하기만 하고 눈물도 안 나왔어요. 더 슬픈 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뉴스를 보고 놀라서 전화하셨는데, 걱정하실까봐 그냥 무사히 집에 왔다고 했어요. 인터넷에는 비난과 욕설이 너무 심해서 친구들에게도 제가 겪은 일을 말할 수 없었어요. 사실 전 그날 서울로 일하러 올라온 친구랑 일 년 만에 만나서 엄청나게 반가워하면서 고향 이야기도 하고, 가족이며 친구들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하고 처음 가본 동네 구경을 하고 있던 거였어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누가 믿어주겠어요? 다행히 그 친구도 살아 나와서 가끔 전화하면서 괜찮은지 서로 물어봐요. 그런데, 둘 다 똑같아요. 멍하고, 지하철 타면 숨 막히고, 사람들 많은 곳에는 가지도 못하고, 쳐다보지도 못하고…. 사람을 다 피해요. 무섭고, 계속 사고에 대한 악몽을 꾸고, 너무 불안해요.”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청년은 점점 고립되어가다가 죽음까지 생각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기로 했다.


재난 생존자와 그 가족, 그리고 사망자의 유가족을 지원하는 모든 기관과 단체는 고립이 가장 위험하고 연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적십자, 미국 물질남용 및 정신건강서비스청, 영국 재난행동(Disaster Action) 등은 한목소리로 개인과 사회의 회복을 위해서는 재난 경험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을 연결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난 피해와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재난 회복 지원그룹’이 왜 필요할까?


1. 재난 회복 지원 그룹(Disaster Family and Survivor Support Groups)이란?

 

재난 회복 지원 그룹은 공통된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정서적 지원과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고, 중요한 이슈에 집중함으로써 서로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그룹에는 유가족, 생존자 및 그 가족과 더불어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여러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다. 


2. 재난 회복 지원 그룹이  필요한가?

 

재난을 당한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자신의 비통한 처지와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긴다. 공감과 이해는 재난의 충격을 회복하는 든든한 바탕이 된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재난에는 극복해야 할 실질적인 문제가 있다. 재난을 겪은 다른 사람들의 지원과 이해가 있다면 재난에 대한 조사나 형사적 조사 절차에 대처하기가 더 쉬울 수 있다. 정부 서비스, 자원 봉사 기관, 법률 전문가 또는 보험 회사의 도움을 구하는 과정도 어려울 수 있는데, 이때 특정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조언과 제안을 제공할 수 있는 지원 그룹은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룹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포럼이 될 수도 있다.


3. 재난 회복 지원 그룹이 어떻게 도움이 되나?

 

재난 경험자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이슈가 생길 때도 지원그룹이 있다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만일 모임이 구성되지 않고 모든 재난 피해자가 흩어진 채라면 위로와 추모의 방식, 피해 복구와 보상, 치료 방식과 기간 등에 대해 당사자의 의견을 내기 힘들고 정부나 언론, 여론에 의한 일방적인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모임을 만들고 참여하는 것은 재난 트라우마의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끔찍한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나 살아남고도 충격에 시달리는 생존자는 슬픔과 분노, 우울과 불안이 뒤섞인 감정에 사로잡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가진 사람이 지원그룹에 연결되어 서로를 돕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건설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절망에 빠진 자신을 구하는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다.

아래 발췌문은 다양한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의견들이다. 

'그룹이 있다면 당신은 공통된 슬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고통이나 고통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거의 대화와 감정의 요약문을 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룹이 있었기에 추도식과 같은 문제에 대해 정부가 우리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만약 그룹이 없었다면 정부는 우리의 이슈에 대해 일방적으로 결정내렸을 것입니다.'

'애도하는 사람들(유가족 등)에게 긍정적인 일에 참여하고 의제를 따라가는 것(예: 추도식, 재발 방지 대책 등)은 특히 남성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끔찍한 재난으로 가족을 잃거나 재난에서 살아남았다는 충격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이러한 감정은 피할 수 없으며 대단히 파괴적입니다. 유일한 구제책은 그들을 지원 그룹과 같은 건설적인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4. 재난 회복 지원 그룹의 실제


1) 첫 번째 단계

재난 회복 지원 그룹을 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지만 재난을 겪은 다른 사람들과 연락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에는 관할 경찰 서비스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재난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필요에 대응하는 비상 상황 대응팀 등을 위한 중앙 정부 지침에는 가족과 생존자를 위한 지원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재난의 성격과 발생 장소에 따라 정부부처, 경찰 또는 관련 지방자치단체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공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룹을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이 요청한다면 목록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또는 그들은 다른 재해 이후에 행해진 것처럼 참석을 원하는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한 초기 회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 그 다음 단계

첫 만남은 동일한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그룹에 속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처음으로 모이는 것은 스트레스가 많고 감정이 복받치는 자리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과 어려움을 겪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 얻는 장점은 그것을 감내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가장 조화로운 그룹은 명확한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는 그룹이다. 이러한 사항은 일부 그룹의 경우 처음부터 매우 명확할 수 있으며 다른 그룹의 경우 회의 및 비공식 모임에서 토론을 통해 이러한 항목이 정해지는 데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서로에게 정서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외부 기관에 접촉할 대표를 정하고, 공통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재난에 특정한 문제에 대해 캠페인을 벌이거나, 기념관을 조직하는 것 등이 목표가 될 수도 있다. 그룹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룹이 원한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연히 초점이 변경될 수 있다.)


3) 그룹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나?

구성원, 법적 지위 및 관리 측면에서 가족 및 생존자 그룹의 구조에는 다양한 옵션이 있다. 일부 그룹은 법인화되지 않은 협회를 설립한 반면 다른 그룹은 가능한 한 비공식적인 것으로 결정한다. 몇몇은 자선단체 방식을 신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옵션에 대한 법적 조언은 특히 그룹에 외부 자금이 제공되는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룹의 위상이 그 성격과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법률 자문을 구하는 경우 법률 협회를 통해 자선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의 연락처를 찾을 수 있다.

그룹의 성격이 무엇이든, 회의 주선, 메모 작성 및 계정 관리와 같은 주요 역할을 수행할 사람에 대해 위원회 구성원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개인이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느끼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사람들이 준비되기 전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압력이 없어야 한다. 일부 그룹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시간을 소모하지 않도록 이러한 역할을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런 다음 위원회는 그룹 회의(그룹의 필요와 희망에 따라 자주 또는 비정기적으로)를 조직할 수 있다. 그룹은 때때로 또는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배포하거나 웹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다. 일부 그룹은 사람들이 서로를 더 잘 알고 가장 공통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소규모 지역 하위 그룹을 구성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구성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채널이 중요하며 전화 회의 또는 이메일 포럼은 구성원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모든 회의에 참석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 유용하다.

그룹 설정 방법에 대해 어떤 옵션을 선택하든 이전에 이 작업을 수행한 사람들과 다른 조직에서 조언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전에 다른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난 회복 지원그룹이나 전문가 단체, 학회, 지원 기구, 정부 당국은 이 모임이 잘 조직되고 기능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4) 온라인 토론 그룹 설정

재난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국내 전역과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온라인 소통 방법을 사용하여 연락하는 기회와 필요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5) 그룹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할 것인가?

그룹의 목표와 목적이 합의되면 그룹은 비용을 충당할 자금을 찾을 위치에 있게 된다. 자금은 재난의 여파로 설정된 재난 신탁 기금이나 자선 신탁 기금, 자원 봉사 기관 또는 정부 부서와 같은 기타 출처를 통해 제공될 수도 있고,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6) 그룹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야 하나?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모든 그룹에서 개인이 그룹의 일부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기간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일부 그룹은 수년 동안 계속되는 반면 다른 그룹은 특정 목적을 달성한 후 해체된다. 그룹이 지속되는 기간으로 인해 '성공' 또는 '실패'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룹 내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이러한 우정은 그룹의 공식적인 삶을 훨씬 넘어서 지속된다.


7) 주의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피할 수 있나?

그룹 내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난에 대응하며 공통적 요구 사항과 고유한 요구 사항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룹은 합의된 핵심 목표 세트를 가져야 하지만 개인마다 다른 시기에 다른 우선 순위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을 문제로 보기보다는 차이점을 인식하고 수용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룹이 발전하고 주요 문제 및 우려 사항에 대한 공동 대응이 필요할 때 적절하게 초점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재난으로 사망한 사람의 부모, 파트너, 형제자매 등 가족 구성원 간의 차이는 불행하게도 우리 경험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그룹에 퍼질 수 있다.

그룹이 그룹을 대신하여 행동하거나 그룹을 대신하여 성명을 발표하도록 한 명 이상의 개인을 선출하는 경우 미디어 또는 정부 부서와 같은 그룹 외부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모든 메시지가 다음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룹 전체의 전반적인 이익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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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룹을 위해 일하면서 재난의 충격에 대처할 수 있나?

그룹에서 더 많은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게 잠재적인 어려움은 재난의 여파가 힘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업무량이 피로와 추가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룹의 필요 사항 외에도 일상적인 책임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를 처리하는 한 가지 가능한 방법은 친구와 친척의 도움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룹 운영의 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위에서 제안한 대로 위원회 내에서 돌아가며 역할을 맡는 것이다.


4. 재난 대응의 원칙에 따른 재난 회복 지원 그룹

 

재난이 발생한 직후에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지침인 심리적 응급처치는 세 가지 행동 원칙을 강조한다. “보고 듣고 연결하라(Look, listen, and link).” 피해자들의 상황과 고통을 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요구와 근심을 듣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도록 사람과 지원을 연결하라는 것이다. 보고 듣고 연결하기는 재난의 상처를 치유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5. 참고자료

 

영국의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이 설립한 Disaster Action 의 지침 “Setting up Family and Survivor Support Groups”

https://www.disasteraction.org.uk/leaflets/setting_up_family_and_survivor_support_groups.pdf


가장 위험한 건 고립…치유의 시작은 ‘연결’. 경향신문 칼럼

https://v.daum.net/v/20230203212212244?fbclid=IwAR1J9sgH5A_tg0yS2fhwdPh0bzQGD3dd2p6iq-3QGBLi8Licth8mpQlMCFk



「세월호 관련 정신건강 장기추적조사 및 정책 활용 전략 개발」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석하여 발표한 내용입니다. 

「세월호 관련 정신건강 장기추적조사 및 정책 활용 전략 개발」심포지엄

-일시: 2023.05.04.(목) 10:00~12:00

-장소: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 2층 스칸디아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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