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혜야말로 쿠자(보물)
[도을단상] 10인조 태양의 서커스 관람단
잔뜩 흐리고 비마져 부슬대는 메트로폴리스의 어느 구석에 위치한 쟂빛 텐트 앞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스멀스멀 모여 듭니다.
한국시리즈의 열기도 사라져 한적한 치킨가게에서 치킨과 맥주를 낮 1시부터 마시기 시작했죠.
매번 모여서 술만 먹느니 문화체험을 하면서 의미있는 송년회를 보내자는 취지는 진작에 취해 어느 구석에 쳐박혔는지 어디에도 안 보이더군요.ㅎ
본공연이 시작되면 연날리기를 하는 천진난만한 주인공 이노센트가 무대로 나옵니다. 자신에게 배달된 장난감 상자 뚜껑을 여는 그는 상자 속에서 나온 트릭스터와 신비한 쿠자의 세계를 탐험하게 됩니다. ‘쿠자’는 ‘상자’, ‘보물’을 뜻하는 고대 인도어 ‘코자(KOZA)’에서 유래한 단어로 공연에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상자 안에서 나온다는 은유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쇼 공연의 배우들이 서커스의 각종 기예를 보여주는 무대라면 빅텐트를 찢었을 텐데, 현란한 기예를 기대한 서커스 무대에서 쇼공연 요소가 너무 많이, 자주, 길게 전게되는데다 기예의 난이도도 아주 높은 것들이 아니다보니 '드디어 태양의 서커스를 보았다'는데 만족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무대나 조명과 서커스 중장비들을 와이어만으로 완벽하게 무게 중심을 잡아내는 테크닉 등은 저를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빛나는 지혜야말로 고대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쿠자, 보물이 아닐까 싶더군요.
2시간 전작을 하고, 2시간 서커스를 보고, 다시 4시간을 더 마셨습니다.
공연관람을 마치고 의례적일 수 있는 리뷰를 했는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마치고 몽환적 판타지를 능가하는 일상의 희노애락으로 너저분해지는 식탁을 새로운 술과 안주로 치워가며 부어라 마셔라 지켜보는 이도 흥성스러웠으나 정작 이튿날 이를 기억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는 마법같은 10인조 쿠자 관람단의 송년회를 마치고 도을은 이제야 부스스 일어나 을녀가 끓여준 국수국물을 찡그리며 들이키고 있답니다.
그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맛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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