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을단상] 아버지의 요리와 술, 그리고 봄

봄을 무치고 씹고 삼키기, 고기는 거들뿐.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아버지의 요리와 술, 그리고 봄

저녁 때 내려오너라.
봄이 오긴 왔나봅니다. 그래서 아버지 텃밭에서 몇 가지 푸성귀가 올라왔나 봅니다.
우리가족 최애 아이템인 돼지고기 삼겹살과 족발을 준비하고, 살림하시는 아버지가 직접 무친 콩나물과 민들레무침과 파김치를 우걱우걱 밀어넣으며 봄을 씹었습니다.

얼마나 급하게 흡입을 헀는지 오늘은 건배샷도 못 찍고 먹는데 집중했네요.
어버지 입맛에는 너무 삶아졌다고 아쉬워 하셨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마치 동파육처럼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수육도 끝내주었고, 그러면 씹는 맛이 없다고 적당히 쫄깃거리며 미끄러지는 족발의 맛도 좋았고, 아버지 텃밭에 둘러퍼지듯 자생하다 걸린 민들레 무침이 쌉쌀하게 혀를 치고 가면 다음 번에는 파김치가 감겨 들어와 목구멍까지 살짝 타격감을 주고 마지막에는 아삭하고 깔끔한 콩나물이 들어와 잡내를 싹 씻어내려갑니다.

그렇게 3사이클이 한 번 돌 때마다 소주 한 잔이 라운드걸이 되어 좌중을 돌아나가기를 몇 차례, 2근을 삶았다는 수육과 족발이 느끼해질 때쯤 잘 지은 쌀밥 가득 한 수저를 뜨고 그 위에 척척 걸쳐지는 봄 푸성귀들을 입이 찢어져라고 우겨넣는 봄 밤의 저작운동이 몹시도 정겨웠답니다.

잠자리 방해 안 되도록 디카페인 커피 기깔나게 나눠마시고, 도을이 할 줄 아는 설거지까지 마치고 상추와 쪽파와 고기와 밥까지 퍼 담아 한 무더기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둔치 위 길게 늘어선 벚꽃이 만개했더군요. 비 대신 불어대는 바람에 낭창거리는 가지의 진폭이 꽤나 큽니다. 와, 춥겠다.
그걸 핑계로 차 댄 후 둔치를 걷자는 약속을 걷어차고 엘베를 타는데 성공했답니다. ㅎ

오늘 부모님과 진달래 동산을 가기로 했다가 못 갔습니다. 벚꽃으로 다들 난리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역시 삼천리 강산에 여기저기 진달래 꽃 필때 화전놀이하는 전통이 있지 않습니까. 귀찮다고 안 가시는 부모님 대신에 제가 내일 또 사서 고생을 해 보죠 뭐.
그니까, 일찍일찍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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