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0초 리뷰

21세기는 여성의 세기

오필리어와 클리테메스트라

by 도을 임해성

오필리어라는 작품을 보았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무려 10명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제작한 것에 1차 놀랐습니다.

햄릿의 연인으로 원작에 등장하는 오필리어의 관점에서 햄릿이 재해석되는 연극입니다.
1, 2, 3, 4, 5, 6,7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면 일반적인 연극에서는 1~7의 순서 혹은 결말인 7을 먼저 보여주고 1~6의 순서로 설명하기 마련인데 이 연극은 특이하게 7-6-5-4-3-2-1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불가역적 시간이 흐르는 시공간을 가역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무대. 매력 있더군요.
그래서 자살하는 비극의 주인공 오필리어는 연극이 끝날 때 가장 맑고 투명한 천진난만한 웃음을 가득 채워 보여주는데, 오히려 그 모습에서 더욱 비극적 결말이 뚜렷이 대비되더군요.

이전 다른 작품에서 만났던 실력 있는 중년배우들을 다시 보게 된 것도 좋았습니다.
아직 그들이 무대 위에 있음이 고맙더군요.

여성이 주인공인 연극 오필리어가 19호 작품입니다.^&^


오필리어를 보고 대학로를 떠나 성신여대역에 있는 뜻밖의 극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간단한 저녁을 먹고 7시부터 본 연극은 클리테메스트라입니다.

이것 역시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 아가멤논이 아니라 그의 아내 클리테메스트라의 관점에서 트로이 전쟁과 그 이후의 복수극을 다룹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평생 동안 본 연극 가운데 가장 감명을 받은 작품입니다.
연극을 다시 본 2019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본 126편의 공연 가운데 가장 좋았습니다. 막이 내리고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놀라운 연출력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소극장을 온 우주로 만들어버리는 연출과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전율하는 공기를 찢어버립니다.
꼭 다시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뜻밖의 극장은 성신여대생과 성북구민은 무료로 연극을 볼 수 있도록 하더군요.
전석 2만 원이면 이 놀라운 세계와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오필리어와 클리테메스트라. 운명과 시대의 그늘에서 얼비치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의 모습으로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작품을 연달아 보면서 과연 21세기는 여성의 세기임을 실감합니다.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에 여성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옛이야기, 이미 아는 이야기를 여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이미 그들이 그러했음을 보여주는 시도에 박수를 보냅니다.
미래 언젠가 그리 될 것이라는 지향의 운동이 아니라 이미 그러했다는 오래되었지만 다소 낯선 사실과 재회하는 것이라는 시도 말이죠.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제가 126편의 공연을 보기 위해 탄 지하철의 핑크석에 임신부가 아닌 사람들이 앉은 비율은 여성들이 125패 1 무였습니다. 여성들의 보다 더한 각성과 실천을 기대해 봅니다.
주인에게는 주인다운 사고와 행동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핑크석에 앉을 권리가 있는 여성을 보면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아기를 갖는다는 것. 그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20호 작품은 제 심장을 터뜨릴 뻔 한 클리테메스트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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