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딴에 국내 대극장과 세계4대쇼 극장과 심천 금수중화 야외극장까지 다 가보았지만 대개 물이란 무대의 배경이거나 특정장면의 소품이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물이 그대로 무대입니다. 아..쫄리대요.ㅎ
대저 물이란 정靜할 때는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요, 동動하여 흐르기 시작하면 순리이기도 하고 거스를 수 없는 힘이기도 하고, 정겨운 생명의 젖줄기이다가도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는 죽음의 질식하는 공간임을 작품의 흐름을 따라 잘 보여줍니다.
늙은 리어는 자신의 왕국을 사랑하는 세 딸에게 똑같이 나누어주고 양위하려 하나, 그리하면 반드시 가족간 불화가 있을 것이라며 막내딸 코딜리어가 반대합니다. 애비의 뜻을 거역한 코딜리어를 내쫓고 거너릴과 리건에게 나라를 나누어준 리어는 막내의 말대로 거지꼴 반미치광이가 되어 온나라를 헤매고 다니는데...
결국 세익스피어를 대표하는 비극에 너무도 어울리는 우리 창의 구슬프고 비감한 곡조 속에서 모두 스러져 죽게 됩니다.
이 고요를 위해,
이 적막을 위해,
그 모든 소란이 필요했던가..
무대 위에 물은 마침내 쓸어내는, 지워버리는, 멀리 떠나보내 돌아오지 못하는 레테의 강물이 되어 무대를, 아니 무대 자체였던 물 그대로를 머금은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리어를 보고 봄비를 맞으며 극장을 나서 현실로 내닫는 오십대 초반의 저는 모든 걸 다 가진 리어왕과 가진거라곤 없는 리어카 인생의 중간 어디쯤에서 서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