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서울숲에서 맑은 하늘의 햇빛을 쳐다보다 재채기를 크게 한 번 하고,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핀 목련의 팝콘을 둘러보고는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를 드디어 오늘 왔습니다.
우디 앨런과 더불어 팝 아트의 쌍두마차를 이루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전시를 보는 즐거움이 매우 컸는데요.
첫번째 작품이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역사 이래로 회화는 동굴을 벗어나면서부터 건축과 조각에 밀렸더랬지요. 그나마 종교화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르네상스에 이르러 회화가 주목받게 됩니다. 황소라는 작품명으로 가장 왼쪽의 황소다운 그림이 그 시기를 상징합니다. 그러다가 카메라가 나오면서 회화에 던져진 질문은 모사가 아니라 인간다운 해석이라는 주제가 대두되면서 피카소 풍의 황소같은 그림의 시기로 넘어갑니다. 가운데 그림이죠. 카메라와 TV의 등장으로 모사와 묘사가 아니라 개념이나 관념을 표현하면서 미술계에 추상의 세계가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맨 오른쪽 그림입니다.
현대미술이 비로서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에 대한 접근임을, 그리고 오백년 회화사를 한 번에 보여주는 작품 황소 연작입니다.
2번째와 3번째는 예술과 비예술의 본질 혹은 경계에 대한 냉소와 도전과 질문을 드러냄으로써 예술의 권력화나 우아떠는 허장성세에 대한 비웃음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인데 그 와중에도 전시관 직원은 바닥의 흰 선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면서 사람들을 제지함으로써 예술이 가진 권력이 온갖 비아냥과 조소 속에서도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꾸부정한 자세로 작은 글씨들을 읽느라 고생 좀 했네요.ㅎ
아방가르드와 추상표현주의, 팝아트와 그래피티에 이르는 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최근 3년간 집중적으로 보러다닌 보람이 있다고 봐야할까요.
왜 요새 NFT가 뜨는 지 알겠더라구요. 자본주의와 대중추수적 경향을 노골적으로 긍정하거나 체화하는 현대미술은 그 이전 예술사조가 가진 권능과 권력에는 기꺼이 뻐큐를 날리지만 기본적으로 실용적이라고나 할까요. 시대와의 공존을 위한 몸부림같기도 하구요. 어차피 예술은 시대의 반영이니 모든 사조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카메라와 영상을 넘어서는 온갖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도대체 미술과 회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과 차별화의 흐름이 팝아트(만화)~그래피티(낙서)~NFT(아예 현실세계와 빠이빠이한 가상세계)로의 확장되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구상~입체~추상을 넘어 회화적 묘사를 아예 포기하고 활자(Letter) 자체가 갖는 의미의 확장성을 그대로 차용하는 뻔뻔함도 이해가 가더라구요.
사실 그들이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는 것인지도 모르죠.^&^;;
"나는 항상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고 싶어했다."
이 질문이 만화와 낙서와 디지털 장난같은 팝아트와 그래피티 그리고 NFT를 예술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