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도 한 번 읽어보시면 유익합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놀라운 전시회를 보았습니다. 3월28일까지라서 못 보실 분들이 많을 것 같고 그것이 못내 안타까워 이 대단한 예술가를 여기서나마 소개하고자 합니다.
시대의 통각(痛覺) - Post 89 와 차이나 아방가르드
우리는 지난 30여 년 동안 새로운 정치-경제-문화적 중심들이 출현하고, 문화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늘어나고, 민족과 국경을 넘어서는 새로운 건 지구 도시들이 탄생하는 것을 지켜봐 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200여 년간 지속되던 인간 서구 자본 중심적 사유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과 도건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1989년은 이러한 전 지구적 변화와 패러다임의 이동이 시작되는 중요한 해이다. 구소린의 해체와 동서독의 통일, 중국의 천안문 사태, 이로 인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팽창, 그리고 인터넷의 발명은 인류의 기억과 삶의 공간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을 예견하는 서구 모더니즘의 분수령이었다면 1989년 이후 인류가 살아온 동시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 1947- ) 이 말한 대로 1989년 이후의 '전 지구적 도시'들은 정치 경제 - 문화적 권력들의 집중이 가장 강력히 일치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동서양에서 등시에 진행된 사회주의의 몰락과 세계화를 통해 중국이라는 강력한 자본의 제국이 새롭게 탄생했고,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북경이라는 도시가 단숨에 '전 지구적 도시'로 탈바꿈되었으며, 전 지구적 문화 권력의 재배치에 따라 중국 현대미술이 국제 미술계의 주류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차이나 아방가르드와 더불어 국제 미술계에 새로운 주류로 급부상한 곳이 영국의 yBa, 독일의 라이프치히 스굴, 인도의 현대미술 등 네 곳이다. 그 중에서도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비서구 미술이 비엔날레와 미술시장 모두에서 전 세계 미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89년에 중국의 지식인들이 목격한 이 두 사건,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천안문 사태는 이후 중국의 사회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공산주의적 이상에 대한 폭넓은 회의와 불신을 가져왔고 중국 내부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천안문 사태의 비극적 결말은 미래에 대한 절망과 무기력증을 불러왔다. 중국사회 전체가 정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인간에 대한 냉랭한 불신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제 중국 지식인의 일상에서 자조와 조롱 냉소만이 그들의 유일한 언어가 되었고, 술과 도박으로 소일하며 무기력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이 시기의 이러한 경향들을 미술 평론가 리시엔팅은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으로 명명했다. 중국과 세계가 동시에 경험한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상처로 인해 차이나 아방가르드가 탄생한 것이다.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으로 대변되는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공존으로 대변되는 20세기의 상처와 영광을 고스란히 체화하고 있다. 인가 지난 세기에 실험한 모든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성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그들 작업의 핵심이다. 그래서 그들의 작업이 중국 내에서만 호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도시들에서 국제적인 언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며 사대 천왕으로 불리는 유에민진과 동료 작가들은 이미 이 시대의 아이콘이자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대중과 자본의 우상으로서만이 아닌 중국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전 지구적 삼들의 모순과 부조리를 체화하고 있는 격렬한 근대의 초상으로 재평가되기를 바란다. 특히 지난 세기 인류가 자행한 환경파괴와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발생한 코로나 19라는 전 지구적 재난 속에서, 그들이 행한 문명과 사회 비판은 지금 우리 시대에 더욱 큰 울림을 던지고 있다. 화석연료와 공진화해온 당대의 자본주의 문명으로 인해 지구 전역은 플라스틱 폐기물로 뒤덮였고, 숨 쉴 때마다 공기 속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이 인류세와 자본세의 시대에 물질문명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꾸준히 탐색해온 사상이 1990년대에 등장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이다. 이들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생물과 무생물을 모두 포함한 물질중심주의로의 전환을 주창한다. 인간과 물질은 함께 변화하고 생물과 무생물을 상호작용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불교의 화엄사상과 인다라망은 신유물론과 조우한다. 유에민은 그가 노장사상이나 화엄론에 깊이 기대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의 작업이 당대의 통각(論)을 선취하고 있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이런 점도 염두에 두고 이번 전시를 주의 깊게 봐주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