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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을 임해성 Jun 13. 2022

허물 벗는 땅

가산디지털단지 천지개벽

<도을단상> 허물 벗는 땅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마지막 남은 역세권 땅이 허물을 벗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던 예수를 글로벌 메시아로 만든 성 바울.

마카오에 남아 있는 성 바울 성당의 벽면처럼, 붉은 벽돌로 굳건한 산업화 시대의 조국을 상징하던 어느 중공업 회사의 성전도 이제 마지막 벽 하나를 남겨두고 있을 뿐입니다.


공순이 티를 내지 않으려고 고무줄 바인드에 두꺼운 책을 가슴에 안고 전철을 기다리는 누나가 오가던 가리봉역은 이제는 워라밸을 구가하며 자유로운 복장으로 흐드러지는 젊음들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가산디지털단지역이 되었고, 한 몫 벌어 반드시 이 공단을 떠야겠다고 이를 악물던 노동자들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강남이나 판교로 가겠다는 꿈을 꾸며 밤을 지새우는 술 취한 젊은이들이 호탕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저 벽이 다 무너지고 나면, 저 땅이 허물을 다 벗어버리고 나면, 새 살이 오르되 더욱 굳은 살이 오르듯 철골과 콘크리트로 뼈대를 올리고 온통 유리로 사방을 비추어 스텔스 기능의 갑옷을 입고 나면, 어엿한 1.8평방미터당 삼천만원의 값이 매겨질 것입니다.


참 세월 빠르네요.

2010년 막 지어진 건물에 임주를 하고 10여년만에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제 어릴적 가리봉역의 흔적을 찾기가 이제는 정말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주 없어지기 전에 일부러라도 닭칼국수 한 그릇 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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