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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을일기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개운함

곁가지를 제거하는 비바람의 의미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개운함

뻔뻔스러운 하늘이 마알간 얼굴을 내밀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밉지 않은 웃음을 짓습니다.


그토록 퍼부었으니 하늘이 얼마나 맑을 것이며 땅이 얼마나 굳어지겠습니까.

인생에도 이렇게 큰 폭풍우가 한 번씩 지나기 마련이지만 그 때마다 돌아보면 약한 곁가지들이 떨어져나갔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에 고무되어 정면으로 대들고 맞섰던 젊은 날의 성취도 뿌듯합니다만, 떨어져 나갔어야할, 혹은 떨어져나가도 별 상관없는 곁가지들이 사라져간 개운함을 느끼게 되는 오늘 같은 날의 맑음도 좋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기계가 고장이 났다고 할 때의 고장故障을 보면 '고의로 장애를 일으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리한 운전조건을 버티고 버티다 못해 고의로 장애를 일으키는, 설정값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기계의 운명에 저항하는 단 한 번의 자유의지. 고장.


지구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미를 잡아먹는 살모사 새끼같은 인간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지켜보다, 견디고 견디다 못해 고의로 장애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하릴 없이 비가 내리고 덤덤하게 무지개가 뜨는 그 무의미한 약속을 매번 보면서 더욱 더 무감각해지고 무례하고 무도한 관계의 방식에 환멸한 어머니 지구가 마침내 회오리를 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살모사 새끼가 뜯어먹을 제 몸을 없이함으로써 살모사의 목숨을 끊어내려는 새로운 사명에 몸부림을 치는 것일까요.


큰 바람 일고 내 삶의 본주는 무엇이 남았으며 곁가지는 무엇이 떨어져 나갔는지, 나의 확장인 우리와 인류에게는 또 무엇이 남고 무엇이 떨어져 나가야 하는 지를 이 번에 뜨는 무지개를 보면서는 그 교훈을 아프게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맛점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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