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 씌운 누명, 오스만 제국에의 복수
많은 사람들이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이 새로운 무역항로 개척 및 대항해 시대의 원인이 됐다는 설명에 익숙하다. 요컨대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을 정복한 오스만 제국이 동방의 향신료가 유럽으로 유입되는 교역로를 차단하자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돼 결국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오스만 제국을 경유하지 않고도 향신료 생산지로 직접 갈 수 있는 새 항로를 개척했다는 식이다. 하지
만 15세기부터 그 이후 수 백년간 계속된 유럽의 경제질서 교란과 폭력적인 식민지배의 직접적인 책임이 유럽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가 아니라 이슬람 세게,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있다는 이런 일반적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동서 교역이 폐쇄되지 않기를 바란 쪽은 되레 오스만 제국이었다. 동서 교역로 폐쇄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세력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은 결코 상업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원한 바는 자국의 상업을 외국 상인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베네치아와 제노바 상인들을 견제했던 이유는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동지중해에 많은 식민지를 가졌고 그 식민지가 오스만 제국에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동지중해에 식민지를 보유하지 않은 피렌체나 안코나(Ancona)와 같은 도시 국가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더 많은 상업적 특혜를 얻기까지 했다.
이처럼 오스만제국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향신료 무역 노선은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Iberia) 반도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입장에서는 향신료 무역이 아직도 이탈리아 상인들, 특히 15세기 때는 베네치아 상인들의 수중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말해 베네치아 상인들에게는 굳이 새 항로를 개척할 까닭이 없었던 반면 이 무역에서 소외돼 있던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 즉,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동방으로 가는 새로운 노선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이 새로운 항로 개척에 기여한 점이 있다면, 동지중해 연안에서 활동하던 제노바 상인들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떠나야 했고 그들이 선택한 곳이 바로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였다는 사실 뿐이다. 실제로 제노바 상인들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새로운 항로 개척 사업에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했다. 콜럼버스가 바로 제노바 공화국 출신이니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항해시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델란드, 마지막으로는 영국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변방이었던 나라들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대의 반영이며, 전통적인 무역질서를 벗어나 약탈경제라는 모습으로 자본주의를 출범시켜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는 그야말로 식민지를 개척하고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7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