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사실 하나는 15세기까지, 나아가 아편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유럽은 절대로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는 지구상에서 세 개의 거대한 체제를 구축했고, 그 안에서 서로 연결된 무역 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동아시아 체제는 중국 그리고 적도에 인접한 동남아시아의 향료 군도를 인도와 연결했다. 중동-몽골 체제는 지중해 동부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도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했다. 반면 프랑스의 거대한 시장 및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이탈리아 도시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체제는 유럽에서부터 중동과 인도양만을 연결했을 뿐이었다.
이런 체제는 부분적으로 중복됐는데, 아프리카 북부와 서부는 유럽과 중동에 연결됐고 아프리카 동부는 인도양과 이어졌다. 그나마 이들 무역 지대도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 ‘동방 무역’이나 이후 ‘향신료 무역’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아시아 산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 비단, 도자기 등을 중동 및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수입하는 흐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렇듯 아시아가 주도한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학살극’이라고 할 만한 사건들이 15세기 들어 줄을 잇게 됐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게 됐을 뿐 아니라 기존의 무역이라는 공정한 룰을 깨고 파괴적으로 그곳에서 금과 은을 빼앗았다. 나아가 그들은 아시아에 직접 접근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아시아가 선두 주자로 있던 세계 경제에 보다 깊숙이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1492년과 1498년에 일어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해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해를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 “아메리카의 발견 그리고 희망봉을 거쳐 동인도 제도에 이르는 항로 개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가지 사건”이라고 적었다. 물론 ‘인류’ 역사상 위대한 사건이 아니라 ‘유럽’ 역
사상 위대한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만.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역시 이 두 사건을 세계사의 결정적 사건으로 간주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가 이 두 사건을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규정한 것은 근대 이후 유럽의 갑작스러운 급부상이 식민지 정책, 노예
제도, 아메리카 및 아시아 식민지 착취 등의 원인이라는 자백이기도 하다. 그 선두에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있었다. 그렇다면 중세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세계를 갈라치기 할 정도로 급성장하게 된 대항해 시대의 벌어진 폭력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왜 유럽인들은 무역이라는 공동의 규칙을 깨고 약탈의 길로 나아간 것일까?
<16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