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히틀러와 히로히토 -막내들의 광기, 냉정과 열정

제1장 우울한 과학의 시대

by 도을 임해성

세계는 넓었다.

그리고 평화로웠다.


아주 먼 옛날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 위로 어제와 똑 같이 생긴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나무 위에 누워 흔들리는 가지들이 내는 부스럭 소리를 들으며 바라보던 젊은 암컷 유인원이 하나 있다.

아마도 무언가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실수를 하필이면 그 날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그 날, 그녀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320만년이 흐른 나중에 그녀의 후손들은 그녀에게 루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한동안 그녀의 이름 루시는 최초의 인간에게 보내는 환호성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에게 세상은 너무나 넓었다. 자신이 주로 생활하는 나무 몇 그루와 가끔 내려서 두 발로 딛어보는 땅이라 해도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이 전부였다. 어쩌면 그녀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 저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중심을 잃고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는 지도 모른다.


그녀가 최초의 인간이 맞든 아니든, 그녀보다 더 오래전의 그 어떤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차라리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후손들이 기원후라고 부르는 세월이 시작되고 150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지구는 넓었다. 아직 많은 땅들이 비어있었고, 일부 사람의 발자국이 닿은 곳이라 해도 그 모든 곳에서 역사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 국가를 만들고 서로 싸우거나 교류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지도를 통해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1500년의 세계란, 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유럽이 전부였다.


바람은 북반구에서 동에서 서로 불었고, 나중에 무역풍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 바람을 타고 물자는 동에서 서로 흘렀다. 극동에서 무역풍을 타고 인도로 가거나 다시 지중해로 가는 배를 타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무역풍을 유럽인으로서 처음 경험한 사람은 바로 콜럼버스였다.

그는 스페인 팔로스 항구에 서서 중동을 거치지 않고 아시아로 가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 갑자기 지구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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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