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을 임해성 Sep 21. 2022

<연재> 우울한 과학, 신난 종교

우울한 과학, 신난 종교


모든 것을 과학기술이 가능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신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신의 영광으로 돌려졌다.

과학기술의 발달의 신호탄이 된 르네상스는 중세 1000년의 역사를 종말로 몰아갔다. 오랫동안 오직 신부만이 성경책을 읽을 수 있었으며, 성경 이외의 다른 책은 읽을 필요가 없었으니 중세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 문맹의 시대였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꽃이 피었고, 금속활자가 등장하면서 유럽 사회는 급속도로 빠르게 문맹에서 문명으로 나아가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오랫동안 권위를 지켜왔던 교황과 종교의 힘을 약화시켰다. 그 틈을 타서 왕권을 강화하고 민족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한 각국의 왕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신의 축복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싶어 했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유럽 세계가 가톨릭과 개신교로 분열되면서부터는 모든 종교 세력과 정치세력이 자신들이 신의 선택을 받은 자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렇게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만났다. 가톨릭은 가톨릭대로 유럽 본토에서 잃은 성지를 해외에서 되찾아야 했다. 예수회를 비롯한 각종 가톨릭 선교회는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배를 타고 아프리카로, 아프리카로, 아시아로, 아시아로 나아갔다. 그들은 그야말로 세상의 끝까지 나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고, 세상의 끝에서 신의 영광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Nicolaus V)는 아폰수 5세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이교도의 땅을 정복해 복속시킬 것을 허용하는 교서를 반포한다. 이른바‘둠 디베르사스(Dum Diversas, 다른 곳까지)’교서다. 교황이 나서서 아폰수 5세에게 아라비아 지역의 사라센(Saracen) 사람들, 이교도, 신앙이 없는 자들을 세습 노예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노예무역을 신의 이름 아래 합법화해준 것이었다.


개신교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교도들의 공화국 네덜란드와 그 뒤를 이은 성공회의 나라 영국도 자신들의 신앙과 국왕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전 세계로 나아갔다. 그렇게 얻어진 부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자극했고, 산업을 독려했으며 식민지는 그 원료를 공급하고, 완성품을 되사는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셈이었지만 궁극적으로 그 모든 것은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는 와중에 어떤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에 스쳤던 것일까. 그들에게는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문명인인 자신들이 무지하고 야만적인 이들을 찾아 나서고 그곳에서 발견한 이들을 문명인으로 만들고 기독교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해졌다. 다시 철학과 과학이 종교의 시녀가 되었다. 암흑의 중세를 힘차게 뛰쳐나온 유럽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암흑이 되었고, 식민지 근대화론이 지나가는 철길과 공장기계들의 소음 너머로 다시 철학과 과학이 종교와 신앙의 시녀가 되었다.


데이비드 흄은 “나는 흑인종의 사람들 중에서는 문명화된 민족을 본 적이 없고, 행동이나 사유 능력이 탁월한 개인조차도 본 적이 없다” 고 했고, 헤겔은 아프리카를 “의식적인 역사의 빛 저 너머, 밤의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유년의 고장”이라고 묘사하면서 “흑인들은 노예제를 전혀 비난받아야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프리카인은 원시 상태의 인간이다.(...) 자연 상태는 그 자체가 절대적이고 완전한 부정의의 상태”라고 주장한 바 있다. 프랑스 신학자 장 벨롱 Jean-Bellon은 선교 외에도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자신의 논거로 사용하였다. 즉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유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자유의 박탈이라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무의미하며, 오히려 노예제는 흑인들에게 구원의 기회이자 식민지 농장의 좋은 조건 속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그 불쌍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은 노예무역의 중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일찍이 아랍 이슬람권에서 아프리카의 이슬람화가 시작된 11~15세기경부터 개종을 통한 인종 개량의 가능성을 말하기 시작했고, 유럽에서도 15세기경부터 비슷한 관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예무역을 “종교, 도덕, 자연법, 그리고 인간성의 모든 권리에 위배되는 거래”라고 비판한 몽테스키외나 “그렇게 추악한 제도를 정당화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철학자의 깊은 경멸과 흑인의 비수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레날 신부, 그리고 언젠가는 흑인들이 ‘코드 블랑’을 만들어 복수할 것이라고 경고한 디드로까지도 근본적으로 흑인이 열등한 종족이라고 생각한 데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서 계몽주의의 전성기에도 흑인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은 ‘개량은 가능하지만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이었다. 종교와 철학에 이어 결국 과학이 나서야 했다. 흑인들의 신체적・해부학적 특징들과 인종적 특성 사이의 연관관계를 찾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예컨대 흑인들의 두개골과 목둘레 크기를 측정하고 흑인 남자의 거대한 성기를 백인 여자들의 작은 성기와 비교하는 식의 연구들이 행해졌다. 그리하여 해부학자나 생리학자들은 흑인을 오랑우탄과 같은 종으로 분류하거나 흑인이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단계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런 경향의 연구들이 하나의 줄기를 이루어 고비노 Gobineau의 인종간 불평등론 Essai sur l’inégalité des races humaines (1853~1855)과 우생학자 체임버 레인 Chamberlain의 19세기의 기원 Genèse du XIXesiècle (1899)에 이르기까지, 19세기 유럽 인종차별주의의 기본 골격을 형성한다


또 리빙스턴은 영국이 아프리카를 점령하게 되면 동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을 종식시키게 되리라 믿었다. 그 외 많은 사람들도 미개인들에게서 전염병, 문맹, 야만을 몰아내야 할 사명이 백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키플링인데, 그는 ‘절반은 어린이이고, 절반은 악마’인 이들 인종을 문명화할 사명이 ‘백인의 짐’이라고 생각했다. 백인의 이러한 우월감에 영향을 준 것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에서 영향을 받은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이었다.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생물진화론에 기초한 사회 이

론으로, 대표적인 사회 진화론자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허버트 스펜서 그리고 월터 배젓, 미국의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 등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약자가 줄어들고 그들의 문화는 영향력을 상실하는 데 반해, 강자는 강력해지고 약자에 대한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고 보았다. 사회 진화론자들은 인간사회의 생활이란 생존경쟁이라고 생각했고, 그 투쟁은 다윈이 제창한 '적자생존'(適者生存)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했다. 사회 진화론자들은 인구변동에 작용하는 자연선택과정을 통해 우수한 경쟁자들이 살아남고 인구의 질이 계속 향상된다고 믿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 역시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는 유기체들로 간주했다.


이러한 결론이 우생학이나 생물학적 결정론 같은 과학의 이름으로, 당대의 대중들이 지녔던 타자에 대한 관념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 아프리카 식민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그러한 고정관념들은 식민 정책을 옹호하는 이들의 이데올로기로 빈번하게 활용되었다. 수탈의 결과로 가난해진 식민지 국가들에 대해서, 가난한 자는 '도태된 자'로서 도움을 주어서는 안 되며, 반면 생존경쟁에서 부(富)는 성공의 상징이라고 인식했다. 한편 사회진화론은 앵글로색슨족이나 아리안족의 문화적․생물학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을 지지함으로써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정책을 철학적으로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렇게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종교적인 이유로, 그리고 또한 과학적인 이유로 이른바 근대적인 우생학, 사회진화론, 인종주의 등의 주요 이념들이 이미 유럽에 갖추어져 있었다.


히틀러가 먹고 자란 모든 정신적 신념의 원천은 바로 그가 나고 자란 유럽에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1889년 4월 20일, 마침내 독일제국의 막내가 태어났다.


멀리 유럽의 반대편 일본에서는 유럽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막내가 태어났다.

1901년 4월 29일, 대일본 제국의 막내가 태어났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세계>


매거진의 이전글 <연재>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출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