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다투거나 억압하지 않습니다. 자원은 공짜라는 전제하에서 리소스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 자본주의는 그것이 돈이 된다는 가능성을 품을 때 그것을 끌어안아 녹여버립니다. 해피엔딩과 권선징악의 메시지는 디즈니를 통해 자본주의와 결합했고, 동네 담벼락이나 굴다리 벽에 쏟아낸 가난과 소외의 울분이 가득한 낙서조차도 그래피티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은총을 맛보게 합니다. 그러니 혹자들의 오해와는 달리, 자본주의는 그 메시지가 선이냐 악이냐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러한 오해는 바로 그 무관심이 악이라고 믿고 싶은 이들의 소망의 발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비해 공산주의는 유물적 가치, 리소스에 대한 보상,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의미 부여나 보상에 대한 관심이나 집착으로부터 시작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 시작 단계부터 '인민적'이지 않은 리소스의 사용에 통제적이거나 적대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에 반해 리소스에 대한 보상따위에 신경쓰지 않는 자본주의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때문에 초기 단계의 리소스의 사용에 대해 관대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 삼켜버리는 것이지요. 그것이 비록 자본주의 자체에 비판적인 메시지라 하더라도 말이죠.
그런 낙서들과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 낙서 한 점에 5억을 받는 기성작가가 되어버린 작가는 자신의 작품 위에 덧칠해진 낙서를 견디지 못하고 복원을 요구했다지요.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낙서 하나를 만들고는 거기에 서명함으로써 '작품'으로서의 생명력을 부여하였고, 마침내 창조자로서의 성취 끝에 밀려드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한 생명을 빌어 다시 생명을 이어가는 하루를 보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