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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을 임해성 Sep 09. 2023

<도을단상> 부자의 전통주 삼매경

권커니 자커니 부자들의 밤

<도을단상> 부자의 전통주 삼매경ㅈ

손자는 고연전 관람을 위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출장에서 돌아와 부모님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베트남 술인 넵머이의 구수한 누룽지 맛으로 빈 속을 깨웁니다. 조용히 깨워도 모든 기상은 화들짝이죠. 30도의 냉수를 맞은 세포들이 선착순으로 줄을 섭니다.


오늘의 메뉴는 엄마가 좋아하는 해물요리인 아구찜과 아버지가 좋아하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호박돼지찌개. 슬프게도 도을은 둘 다 좋아하고 거리낌 없이 많이 먹어 마침내 경계 없는 경지, 아니 지경의 몸을 갖춤으로써 스스로 겸손합니다.


첫 술은 가볍게 주향酒香 25.

허허, 그 녀석 모처럼 만난 부자들의 만찬을 훼방하지 않으려는 듯 모든 것이 평범합니다. 이름도 술냄새라는 이름 그대로의 술냄새, 맛도 술맛,  도수도 25도 딱 그대로의 FM병사 이등병과 만난 느낌. FM밖에 모르는, 그래서 파격과 변용을 모르는 이등병처럼 좀 밋밋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만, 암튼 그 덕에 활짝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하였으니 할 수 없이 두번째 술을 땁니다. 춘희 40.

와우, 피어난 이야기꽃이 사과 꽃이었나 봅니다. 단맛이 강한 수밀도인가 싶을 정도로 향긋한 사과향의 꽃내음 뒤에서 매연을 갑자기 뿜어대는 경유차 소형트럭같은 매캐함이 앞의 향기를 다 지웁니다.


비로서 이야기가 술로 향합니다. 모처럼만에 좋은 술을 만났다며 가족들의 얼굴에 이번에는 환한 웃음꽃이 핍니다.

중국의 명주 가운데 펀주라고 있습니다. 딱 첫 잔, 한 잔만 석유를 마시는 향이 나는데 신기하게도 두 번째 잔부터는 그토록 강렬했던 석유 냄새가 사라지고 천하명주의 반반함과 기교를 보여주지요.


이 술은 순서가 거꾸로일 뿐 그 펀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앞으로 오색영롱하여 몽롱한 향기가 가득하여도 그 뿐이러면 여인들의 술이라고 내칠 것인데, 목을 부드럽게 넘어간 다음  회전톱날이 목줄기를 타고 올라오며 역주하듯 뿜어대는 작열감과 매캐함의 상남자 같은 매력에 단 한 번도 2시간을 넘지 않은 식사시간을 30분이나 넘깁니다.


캬~ 안주는 안주니까 못 먹고 술은 술술 잘 넘어가는, 부자들의 만찬에 끼지 못한 하루가 부끄러움을 못 이겨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지더군요. 술도 안 먹었는데 어찌 그리 얼굴이 벌겋던지요..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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