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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0초 리뷰

<도을단상> 463.뮤지컬 사형수는 울었다.

1977년 겨울과 2024년 여름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463.뮤지컬 사형수는 울었다.


피고 박현석을 사형에 처한다....


1977년 겨울.


대한민국에서 투표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이지요.

종신대통령이 된 박정희 군부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도 군수도 모두 중앙에서 임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국가가 공동체의 이름이고, 국민은 아직 권리보다는 의무의 무게가 더 무거웠습니다.


판자촌 7세대가 모여사는 보령산 골짜기에도 희망이 있었죠. 똘똘한 현석이가 검판사가 되어 출세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을 사람들의 기대가 그것입니다.


어느 날 불법건축물에 대한 철거가 시작되고 조용한 산골마을에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난리가 납니다.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우리도 국민 아니냐, 어찌 개돼지 만도 못한 처우를 하느냐고 울부짖는 사이로, 불법건축물인 것은 사실이 아니냐, 국가도 봐 줄만큼 봐줬다, 권리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국민의 도리를 다하라는 고함이 울려퍼집니다.


판자집에 불을 지르려는 공무원들과 대치하던 와중에 현석이 그만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헌법 1조와 10조, 34조 1항을 외치는 것으로 공연이 끝이 납니다.


소극장 뮤지컬의 무서운 성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배우들이 노래와 연기도 잘 하고, 작곡도 좋아서 마음에 드는 넘버들로 가득한 무대였습니다.


만석의 공연을 보고 길을 나섭니다.


2024년 여름.


가난이 부끄러움이라면 너무 처절하고,

가난이 자랑이라면 너무 뻔뻔한 것이겠지요.


국가와 국민은 정부와 시민의 이름으로 대체된 오늘, 정부와 시민의 권리와 의무는 무엇일까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반정부는 반국가라며 끌려갔던 어두운 세월의 그림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보수와 진보가 반정부는 반국가가 아니며, 나의 신념과 이익을 담보하지 못하는 정부는 내 정부가 아니라는 놀라운 각성 아래 완벽하게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양쪽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하는 이가 있다면 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운전하는 내내 말이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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