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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Sep 19. 2022

억울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과하는 법

미안미아냏


대학생 시절, 가장 집중이 잘 된 시간은 시험 바로 전 2~30분 정도였습니다. 시험 기간 내내 이해되지 않던 내용을 빈 종이에 정리해놓은 후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삼킨 음식처럼 머릿속에 쑤셔 넣었습니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외운 내용을 한쪽 모퉁이에 옮겨 적고 적당한 답을 공란을 채워 넣었지요. 시험이 끝나면 모두 잊어버린다 해도 목적은 시험지를 채우는 것이니 보통은 성공했습니다.


우리에게 닿은 수많은 정보 가운데, 선택을 받은 정보는 아주 잠시 동안만 우리의 기억에 머무르는데, 이를 단기기억 short-term memory (혹은 적극적으로 기억을 처리한다고 하여 작업기억 working memory)이라고 부릅니다. 단기기억에 남는 정보는 우리가 애써 노력하면 나의 영원한 기억 저장소(장기기억 long-term memory)로 옮겨갈 테고, 그렇지 않으면 휘발되어버립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 다녀온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마늘, 우유, 소금을 사 오라는 말에 마늘, 우유, 소금, 마늘, 우유, 소금.. 슈퍼를 향하는 내내 그 정보를 되뇌어봅니다. 그러면 적어도 물건을 계산하는 순간까지 우리가 사야 할 미션의 목록이 마음에 남습니다. 


만약 슈퍼를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서, “나 지금 떡볶이 먹으러 가는 길이야”라는 말을 듣게 되면 기억의 목록은 엉망이 됩니다. 마늘, 우유, 소금, 떡볶이? 떡볶이, 고추장? 뒤죽박죽 엉켜버리지요. 순간적인 기억은 이토록 비실 거립니다. 그래서 오늘 전 이런 기억의 한계를 토대로 효과적으로 사과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억울하긴 한데 결과적으로는 나의 잘못이어서 사과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미안하다는 말도 하겠지만 상황도 설명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사과도 하고 사정도 말했다가,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파국으로 치달을 때가 있습니다.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이런 식이라니. 자존심을 버린 선택에 후회가 몰려옵니다. 이럴 땐, 나의 사과 방식이 잘못된 것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 아래 두 가지 사과 순서가 있습니다.


A. 늦어서 미안해, 오는 길에 차가 너무 막히더라. 왜 하필 지금 공사를 하는 건지.

B. 오는 길에 공사를 해서 차가 너무 막혀서 늦었어. 기다렸지? 미안해.


이 오묘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분해야 합니다. 인간이 순간적인 정보처리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업기억은 마치 구멍이 뚫린 짤 주머니와 같습니다. 반죽이 계속해서 채워지면 먼저 들어와 있던 반죽은 구멍을 통해 밀려 나갑니다. 이처럼 먼저 들어온 정보는 나중에 들어온 정보에 의해 쫓겨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상대방의 이야기 전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바로 직전에 한 이야기만 마음에 남아 의식을 지배하지요.


사과 이후에 상황 설명이 들어간다면, 상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립니다. 상대방의 주의는 상황 설명으로 초점이 맞춰져 변명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상황에 대해 반박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그 시간에 차 막히는 거 몰랐어? 더 일찍 출발했어야지.”처럼 말이지요. 


이제 당신은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라고 반박할 것입니다. 저는 압니다. 당신의 마음이 ‘그래서 미안하다’라는 것을 말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말 순서는 진심을 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미안해 그런데 어쩌고저쩌고’의 순서로 전달되지요. 결국 상대는 “미안하다는 사람 태도가 그래?”하며 격분하게 됩니다.


다툼의 원인은 대부분 별것도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본질에서 벗어나 쓸모없는 감정 소모전으로 확장되는 것이지요. 주제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줘야 합니다. 거기에 사족을 붙이면, 사족이 몸뚱이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사족에 대한 상대방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예상치 못한 상대방의 반응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변명을 늘어놓게 되고 그 변명은 처음 했던 사과의 진실성을 무너뜨립니다. 


하지만 상황 설명 이후 사과가 따라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마지막에 이야기한 사과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마무리를 사과로 끝내는 것이지요. 어찌 되었든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면 용서받기가 편합니다. 


물론 사과하기 전 너무 상황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하고 답답해할지도 모르니까요. 사과는 짧고 간결하게, 특히 상황 설명은 짧게 하세요. 왜냐하면 상대는 당신이 처한 상황이 궁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사과로 들어가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사과할 때는 이것만 기억하세요. ‘상대는 마지막에 한 말만 기억한다.’ ‘마지막에 한 말이 말꼬리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방법은 이 순서가 되겠습니다. 먼저, 사과하여 나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후 상황 설명을 ‘간단히’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과한다. ‘미안하지만 나도 억울하다’가 아니라 ‘상황은 억울해도 내 잘못이 맞다’ 이 순서로 이야기한다면 당신의 상황도 이해하면서 사과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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