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공방 Sep 26. 2022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심리학: 사회교환이론




지인 중 누군가 책을 내면 왜 새 책을 당연히 공짜로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차 만든다고 새 차 나오면 한 대씩 주는 것도 아니면서. 책과 차를 비교하는 게 억지스럽다고? 차 한 대 만드는 것만큼 책 한 권 쓰는 데 저자가 들이는 공을 왜 따져보지 않는 걸까. (편애하는 문장들, 이유미,  p.127)



아는 사람 중 작가가 탄생하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래서 책을 선물해달라고 합니다. 사인도 이쁘게 남겨서 말이지요. 그런데 아시나요? 저자도 자신의 책을 ‘구매’합니다. 한 권의 책을 선물로 주면 그 값을 따라잡기 위해 7~10권의 책을 팔아야 하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저자는 판매 수익보다 선물로 나눠준 책의 지출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이런 황당한 경우는 누구에게나 왕왕 일어납니다. 


평화로운 삶을 꿈꾸며 제주살이를 시작한 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 때문에 버티지 못했지요. 그리워서가 아니라 지긋지긋해서였습니다. 제주로 여행을 계획한 친구들은 늘 그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들의 전화는 그를 공항으로 이끌었고, 유명 관광지를 가이드 하게 만들었고, 맛집을 소개해 주도록 흘러갔지요. 멀리서 온 친구들은 도무지 지갑 여는 법을 몰랐고, 숙박도 그의 집에서 해결했습니다.


노래 ‘콤플렉스’에서 ‘전화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특히 너네 양화대교 지나갈 때.’라고 애원한 ‘양화대교’의 자이언티처럼, 제주 올 때 전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속으로 애원했습니다. 꿈꾸던 전원생활은 무료 봉사, 아니 비용을 지불하는 유료(?) 봉사가 되었지요.


부탁이 부담스러울 때는 두 가지 옵션이 함께 따라옵니다. 손해를 감수하며 괜찮은 사람의 이미지를 지킬지, 사양하는 사람이 되어 상대를 실망시킬지. 쉽지 않은 결정이지요. 응당히 요구하는 사람은 죄책감도 세트로 줍니다. 내가 못 나고 이기적이어서 사소한 희생도 어려운 것인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하게 되지요. 하지만 당신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닙니다.


다섯 살 조카와 놀이터를 갔습니다. 조카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시소로 올라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하중에는 빈부격차가 존재했습니다. 시소가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려면 제 허벅지 홀로 최선을 다해야 했지요. 행복한 조카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발 구르기를 차마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음 날 몸살이 나고 말았지요.


시소는 양쪽에 탄 사람의 무게가 비슷할 때 재미있는 놀이가 됩니다. 하지만 한쪽에 더 큰 비중이 있다면 한 사람만 고생하는 일거리가 되지요. 더 무거운 사람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야 하고, 앓아눕거나, 놀이를 포기하게 됩니다. 관계라고 다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교환이론 Social Exchange Theory에 따르면 관계에는 교환이 필요합니다. 무언가를 제공하면, 그에 대한 응당한 대가가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대가는 정성을 쏟은 만큼의 크기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 대가는 물질적일 수도 있고 진심 어린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나의 노력을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할 때, 너무나도 당당하게(그리고 뻔뻔하게) 요구할 때, 관계의 균형은 무너지게 됩니다. 일방적인 관계로 전락하고,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진 사람이 끝내 지치게 되지요.


‘에이, 그거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라는 마음을 시작으로 요구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치킨을 한 마리 주문하고 아이가 먹을 순살 몇 조각을 추가로 요구합니다. 본인의 실수로 음료를 쏟고 새로 준비해달라고 합니다. 같은 동네 사람에게 카풀을 하자며 가는 길이니 굳이 유류비는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왕 데려다주는 거 집 앞까지는 내려줘야 하지요. 연예인에게 형편이 어려우니 돈을 빌려달라고, 아니 달라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매일 차리는 밥에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며 배우자 허락도 없이 손님을 마구 초대합니다. 


이 모든 사람의 공통점은 무리한 부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탁이 무리하지 않다고 믿는 것입니다. 더불어 거절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하면서 말이지요. 청하는 이는 자신의 부탁이 노력을 요하는 일인지 아닌지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진심이 선행된 능동적 행위 이외의 모든 것은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오후, 한 여인이 길을 걷다가 카페에 앉아있는 피카소를 발견합니다. 그녀는 거만한 태도로 적당한 사례를 할 테니 자신을 스케치해 달라고 합니다. 피카소는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그림을 완성하지요. 그리고 5천 프랑을 요구합니다. 칠백만 원을 웃도는 금액입니다. 그녀는 고작 3분밖에 걸리지 않은 그림이 왜 이렇게 비싼지 항의합니다. 그러자 피카소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니오, 이 수준의 그림을 그리기까지 제 일평생이 걸렸습니다.”


항간의 일화인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 틀리지 않음은 확실합니다. 당신의 애씀은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당신은 그에 응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억울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과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