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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Oct 04. 2022

우울할 땐 이렇게 행동하세요

매일 카드를 입에 물고 있었더니


인생 첫 방송 출연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이 어떨지 궁금했지요. 방에 처박혀있던 오래된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삼각대에 세우고 녹화 버튼을 누른 뒤 대본을 읊어 보았지요. 나름 프로답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엉망이었지요. 화면 속 저는 진지한 주제도 아난데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문득 한 스포츠 경기에서 비웃는 표정으로 논란을 산 선수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비웃은 적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태도 논란으로 많은 안티팬을 갖게 되었지요. 그 선수가 얼마나 억울할지 공감되었습니다. 나름 웃는다고 웃은 제 표정도 저 모양이었으니까요. 활짝 웃는다고 했는데 사진 속 얼굴은 정색해있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고 생각했는데 화면 속 나는 구부정했습니다. 바른 자세와 전달력 높은 표정은 연기자들이 엄청난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우리는, 생각만큼 정확한 표현을 하며 살지 않습니다.


문제를 직감한 저는 웃는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안 쓰는 신용카드 한 장을 소독한 후 반으로 접었습니다. 그리고 개구기를 끼듯 입 안에 끼웠지요. 양 입술이 카드 모양에 맞게 올라가면서 불편함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볼의 근육을 동원해야 했지요. 평소에 안 쓰던 근육에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미소는 연습하면 할수록 자연스러워졌고, 카드를 빼도 웃는 표정이 유지되었습니다. 역시 뭐든 훈련하면 되는 것이지, 내심 뿌듯한 마음을 가졌지요. 


그런데 그 시기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평소 책을 좋아해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권 정도는 읽었는데요. 도무지 책이 읽히지 않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문득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읽는 책들은 대부분 현실에 고단함이 묻어나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는 전 미소 짓고 있었지요. 웃으면서 우울한 이야기를 읽으려니 줄거리에 몰입할 수 없었던 겁니다. 




유쾌한 방송인 임창정이 한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울할 때 그냥 화장실로 들어가서 미친놈처럼 웃는 거야. 안 웃긴데도, 그냥 웃는 거야. 그렇게 계속 웃으면 웃는 표정으로 근육이 굳어져.”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행복이라는 놈은 멍청해서 웃는 사람에게 붙어” 놀랍게도 그의 이야기에는 사실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웃을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정서(기쁨) 영역과 근육(미소)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됩니다. 동시에 활성화되는 일이 잦아지면 한 세트가 되지요. 기분이 좋으면 표정 근육에 관여하는 뇌 영역이 함께 활성화되어 더 쉽게 웃게 됩니다. 반대는 어떨까요? 표정 근육을 사용하면 정서 영역 역시 활성화될까요? 그렇습니다. 


표정은 기분의 방아쇠가, 기분은 표정의 방아쇠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웃음 근육을 사용하면 기쁨을 느끼는 뇌 영역에 자동으로 전원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고 착각합니다. 이를 얼굴 피드백 효과 facial feedback effect 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표정으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행동을 통해서도 나타나지요. 이를테면, 우울할 때 우리 몸은 처집니다. 우울함과 까라지는 행동이 세트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울함이 밀려오면 이불 속에 파묻히고 싶고, 가만히 누워있고 싶습니다. 까라지는 행동이 먼저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진 행동을 유지하면 우울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깁니다. 우울하지 않던 사람도 우울하다고 착각하게 되지요. 하지만 우울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미키사토시 감독의 <인스턴트 늪>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하나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연못에 여러 가지 물건을 던져버립니다. 그런데 검은 고양이 인형을 던지는 순간 불길한 기운을 느낍니다. 어쩐지 자신이 저주받았을 거라는 두려움이었지요. 그 느낌은 사실이었을까요? 정말 하나메의 인생에는 하나같이 안 좋은 일만 벌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메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의 친아버지는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지요. 그녀는 용기를 내어 진짜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친구가 됩니다. 


여전히 되는 일이 없는 일상은 계속됩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가게로 가 희망이 하나도 없다며 우울한 소리를 하지요.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겠다며 갑자기 세면대에 물을 틉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주스를 사 오자고 합니다.




물이 차오르는 세면대를 등지고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달립니다. 빨리!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걸어야 물이 넘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집 근처 자판기를 찾아 주스를 뽑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세이프! 물은 다행히 넘치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흥분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못하지요.



기분이 좋아진 하나메는 이번에는 욕조에 수도꼭지를 틉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게임을 시작하지요. 이번에는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오자!


인생에 희망이 없는 것 같고 우울감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느리고 무거운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 행동은 우울감을 고조시켜서 우리 마음을 진흙이 가득한 늪으로 잠식시켜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를 설레고 활기차게 만드는 행동은 감정을 고조시키지요. 그 감정은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도록 우리 마음을 부추깁니다. 


우울할 땐 마음으로 수도꼭지를 트세요! 그리고 달리세요! 행복으로 한달음에 나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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