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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Jan 23. 2022

심리학의 필요

자두씨를 삼킨 강아지


어느 여름 날, 물을 마시러 주방에 갔는데 식탁에 놓인 자두 몇 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엔 좋아하지도 않던 자두가 그날따라 왜 그리 탐스러워 보이던지, 깨끗이 씻어 입에 한가득 베어 물며 방으로 들어왔지요. 과즙을 뚝뚝 흘리며 자두를 맛보고 있는데, 경쾌하고 분주한 발소리가 가까이 들려왔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까만 개가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였지요. 동그랗게 뜬눈에 갸우뚱거리는 고개를 보니, “누나! 그거 맛있어? 나도 먹어보면 안 돼?”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때, 사고가 터졌습니다. 과즙으로 미끄러워진 자두를 제가 놓치고 만 것이지요. 까만 개는 때를 놓치지 않고 씨까지 통째로 꿀떡 자두를 삼켜버렸습니다


“으이그, 바보야. 그걸 씹지도 않고 먹으면 어떻게 해!” 평소에도 이것저것 삼키는 말썽꾸러기였기에 이번에도 별스럽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TV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문득 한 문장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며칠 전 반려동물 커뮤니티에서 봤던 글의 제목이었습니다. ‘어떡하죠? 강아지가 자두씨를 삼켰어요!’ 내용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습니다. ‘강아지가 옥수수를 삼켰어요’, ‘강아지가 비닐을 씹었어요’, ‘고양이가 털을 먹은 것 같아요. 어떡하죠?’ 이런 질문들은 반려동물을 처음 키우는 사람들이 으레 한 번씩은 하는 대수롭지 않은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에 봤을 때는 ‘그래, 처음엔 별게 다 걱정인 거지’라고 생각하고 넘겼던 문장이 별스럽게 머릿속을 휘감았습니다. 이거 뭔가 큰일이 났다는 직감이 들었지요.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얼른 반려동물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자두’로 키워드 검색을 했습니다. 자두씨를 먹었다는 글은 그해에만 몇 페이지 넘게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중 댓글이 가장 많은 글을 읽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요.


자두씨는 아래는 동그랗고 위는 뾰족한 모양이지요. 동그란 부분은 좁은 장을 미끄러지듯 잘 빠져나올 수 있지만 뾰족한 부분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결국 자두의 과육이 위산에 녹으면 그 씨는 장 여기저기를 찌르게 됩니다. 그렇게 장을 긁으면서 내려와 출혈을 일으키고,설상가상으로 어딘가 박히면 빠지지 않아 상처를 곪게 만듭니다. ‘응가’로 온전하게 나오지 못한 자두씨는 배 속에 남아서 상처 내기를 반복합니다.장이 편하지 않은 강아지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힘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강아지의 장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보호자는 음식을 먹지도 않고, 응가도 잘 하지 않는 강아지를 보며 어리둥절해합니다. 더워서 입맛이 없나, 컨디션이 좋지 않나 하고 지켜보기로 하지요. 그 상태가 방치되면 장은 점점 썩어가고, 강아지는 결국 장폐색으로 죽게 됩니다. 보호자는 영문도 모른 채 강아지와 이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처음부터 그 글을 자세히 봤더라면, 아니 그냥 클릭 한 번만 했더라면 좀 더 조심했을 텐데. 잠깐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을. 아,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 걸까! 자책을 하며 까만 개를 동물병원에 데려갔고, 우여곡절 끝에 저의 작고 사랑스러운 반려견은 자두씨를 몸 밖으로 안전히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 책을 시작하면서 이게 무슨 ‘개’ 소리냐고요? 우리가 왜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제가 무얼 해야 하는지 이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되었거든요. 우리는 모두 자두를 통째로 삼킨 강아지처럼 살아갑니다. 누군가가 주는 상처가 뾰족한지도 모르고 꿀떡 삼키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점차 본색을 드러냅니다. 덮여 있던 과육이 사라지고 자두씨가 남듯, 말과 행동의 포장이 사라지고 뾰족한 실체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을 찔러서 피가 나고 고름이 나게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 이 고통이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점점 상처가 커지고 덧나고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그대로 방치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지요. 그래서 고통을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처가 곪아 있을 때도 많습니다. 


또 우리는 강아지에게 자두를 먹게 한 저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참 무지하게도, 자두가 누군가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악의 없이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건네고,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합니다. 한번 한 말과 행동은 되돌릴 수 없는데도 멈출 줄을 모릅니다.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시름시름 앓느냐며 오히려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미 삼켜버린 자두씨를 꺼내는 일은 번거롭고 어렵고 또 위험한 일입니다. 불가능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자두씨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누군가 주더라도 먹지 않을 것이고, 상대방에게 굳이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도 똑같습니다. 한번 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번거롭고 어렵고 또 위험합니다. 전문상담사나 정신과의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언제나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정 또한 쉽지 않지요. 하지만 마음의 이치를 미리 안다면, 완전히는 아니라도 꽤나 효과적으로 문제 발생 자체를 방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말이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이런 행동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기만 한다면, 부주의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도 없어지는 것이지요. 


마음의 이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반려동물 커뮤니티처럼 마음에 대해 묻고 답하는 커뮤니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걱정 마세요. 그 모든 이야기는 심리학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반려견에게 자두씨가 위험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지요. 씨가 뾰족해서 배 속을 찌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논리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찾기 어려운 정보도 아닙니다. 관심만 있다면, 인터넷에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여도 알 수 있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지식이 반려견의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전문용어를 빼고, 복잡한 연구 방법을 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심심할 때 인터넷 게시물을 살펴보듯 그냥 한 번 훑어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우리 마음의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지요.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알 수 있게 해주고, 의도하지 않게 남에게 상처 주던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줍니다. 물론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주기도 하지요.


‘어떡하죠! 제가 마음을 다친 것 같아요!’ 

‘어떡하죠!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했어요!’ 


저는 이런 ‘마음의 자두씨’에 대한 고민과 질문에 응답하는 심리학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아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지만, 몰랐을 때 결과가 치명적일 수도 있는 심리학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겪어본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경험을 심리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풀어보려 합니다. 제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 속 이야기, TV 속 이야기에서 당신의 이야기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알게 모르게 건넸던 자두씨는 무엇인가요? 

당신을 아프게 하는 마음속 자두씨는 무엇일까요? 

이 책을 덮을 때쯤 당신이 답을 내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인간의마음을이해하는수업 들어가는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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