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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Apr 21. 2022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방어기제?

진짜 낙관주의와 방어기제의 차이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은 꼭 한 명씩 있다. 혹여나 없다면 그게 자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나는 어느 쪽일까? 다행히도 가는 곳마다 악당 한 명씩은 꼭 만났다. 나는 그쪽은 아닌 모양이라고 안도했다. 그러나 안도함도 잠시 시련이 너무 컸다. 이상한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결코 견딜 만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오래 함께 지내다보니 한 가지 사고 습관이 생겼다. 최악의 경우를 미리 떠올리는 것이다. 이 사람 때문에 망가지진 않을까? 저 사람 때문에 손해 보진 않을까? 파국적 사고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 진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면역이 생겨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던 내 삶에도 봄날은 왔다. 꼬였던 일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상한 사람은 떠나가고 좋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꿈꾸던 일도 이따금 이루어졌다. 세상을 향한 나의 마음은 시나브로 따뜻해졌다. 걱정이 생겨도 좋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잘 되는 나를 기대했다. 여태 잘 풀렸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될 거란 마음가짐으로 살게 되었다. 그렇게 방, 심, 했, 다.


유기견 한 마리를 가족으로 맞이해 따뜻한 날들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날도 즐겁게 산책을 다녀와 강아지의 발을 닦아 주고 있었다. 그러다 발가락 패드 하나가 불긋하게 부어올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기에 물렸나 했다. 긍정적인 나는 별일 아닐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며칠 밤이 지나도 부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동네 병원을 향했다. 병원에서는 단순 뾰루지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역시 별거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약을 먹이니 부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때뿐 시간이 지나니 다시 재발했다.


강아지를 오래 키운 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불행한 말을 던져 댔다. 종양이 의심된다는 재수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긍정의 여신인 나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설마 우리 강아지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느냐며 좋게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긍정은 생각에 그칠 뿐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 발바닥 전체가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큰 동물 병원에 갔다. 정밀 검사를 했고 종양으로 의심되는 세포가 발견되었다. 결과는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왔고, 검사비는 고작 6만 원이었다. 종양이 의심되는 발가락을 절단하기로 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그 생각이 들자 나에 대한 혐오감이 밀려왔다. 삼 개월이라는 시간을 미련하게 버텼다. 좋게 생각하면 잘 풀릴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붙들고.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한 결과가 고작 이런 거란 말인가. 역시 내 주제에 긍정은 개뿔.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니, 되었다고 착각했다. 나는 그저 마음이 여려진 것이었다. 시련에 단련된 잡초 같던 마음이 온실의 화초처럼 물렁해졌다. 좋은 일 몇 번에 말이다.


나에게 긍정적 생각은 사실 두려운 현실을 회피하는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부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것. 죽은 자녀의 아침밥을 매일같이 차리는 엄마, 허공을 보며 이미 떠난 애인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 병명을 진단받고 의사를 돌팔이 취급하는 환자. 그럴 리가 없다고,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외치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주어진 불행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잘될 거라고 믿는, 아니 믿는 척하는, 나는 부인하는 사람이었다.


반려동물이 유기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털 날린다고, 너무 컸다고, 더 이상 귀엽지 않다고, 말을 안 듣는다고,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든다고, 병원비가 많이 든다고, 귀찮다고. 물론 그 모든 이유는 핑계일 뿐, 무책임한 인간이 문제의 근원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보며 왜 버려졌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럼 행동이 문제인 건가? 하지만 집에 오자마자 패드로 조르르 달려가 배변을 하는 모습을 보니 그것도 아닌 듯 했다. 그러면 어딘가 아플지도 모르는 터였다.


하지만 그 사실 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말썽을 피우는 것이 나았다. 아프지 않을 거라고, 오래 내 곁에 머물 거라고 믿고 싶었다. 두려움을 억압하고 현실을 회피했다. 별거 아니라는 동네 병원 의사의 말에 기대 희망적인 생각만 했다. 곧 나아질 거라고.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라고.




‘좋은 일 생길 것 같아요? 안 생겨요.’

몇 해 전 시니컬한 문구가 유행처럼 번졌다. 자매품으로 ‘애인 생길 것 같아요? 안 생겨요’ 등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에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 고증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는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정말이지 잘 안 생긴다. 기대했던 일은 쉬이 어그러지고, 실망스러운 일은 빈번히도 찾아온다. 그럴 때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부정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직면하는 용기.


대비할 수 없는 불행은 종종 우리를 찾아온다. 이는 우리의 통제권을 벗어난 일이다. 긍정적 마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의심 그리고 경계와 대비다. 그것들을 잘 해내려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 역시 부정적인 사람이 승자인가? 그건 또 아니다. 좋게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좋은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답은 이거다. 현실을 긍정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나 자신을 긍정하는 것.


사건이 터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후의 노력은 통제할 수 있다. 강아지의 종양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나,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고 치료하고 돌보는 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굴었다. 할 수 없는 일은 긍정하고, 할 수 있는 나는 부인했다. 그러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정신 승리했던 것이다.


긍정의 힘은 무한하다. 그렇다고 긍정의 가면에 속아서는 안 된다. 긍정은 때때로 우리를 역습한다. 가장 풀어진 순간에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불안을 감추기 위해 긍정으로 덮어 놓은 현실은 결국 드러나고 만다. 진정 긍정적 마음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감당해 낼 수 있다고 나를 믿는 태도다. 비겁한 긍정은 힘이 없다. 긍정의 힘은 용기와 노력이 함께할 때 비로소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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