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 마음이 흐르는 대로/지나영 지음]
자신만의 이유로 머리가 복잡하게 엉켜있다면, 잠시 머리의 스위치를 꺼야 한다. 정신과 교수로 먼저 유명한 저자 '지나영'은 자유신경계 질환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 투명하는 시간을 보냈다. 본래 천성이 열정적이고 모험적이며, 외향적이었던 그녀에게 '모든 것'이 멈춰진 시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제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업에서 '자신이 느끼는 최선의 도움'을 주던 시점에서 '환자의 처절한 마음'을 느낀 후, 그녀와 가족에게는 다른 시야가 열리기 시작한다.
"하나의 문이 닫힐 때는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를 괴롭힌 질병은 '타인의 시선'과 '바람'이 아닌 그녀와 가족이 진심으로 원하는 가치와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일'에 진심이던 그녀와 의사 남편이 회사에 보내던 시간은 '가정'안으로 새로이 편성되었으며,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위치에서 '질병' 앞에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러한 자세는 타인과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영어 표현 중에 "You teach poeple how to treat you"라는 말처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 가르치도록 만들었다. 나 스스로의 가치를 내면에서 먼저 인정하니, 사용하는 시간, 선택, 관계 등의 모든 영역에서 나를 존중하고 가까운 사람을 더 귀중히 여기게 했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유쾌한 면모가 나를 웃음 짓게 했는데, 하나는 미에 대한 마인드였고 두 번째는 자신의 단점에 대응하는 자세였다.
한국은 미적인 기준이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는 어릴 적부터 못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어 일찍이 예뻐질 것이라는 가능성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년 볼티모어에서 열리는 싱글 남녀 중 대중의 추천을 받은 '볼티모어 톱 싱글즈'를 뽑는 행사에 뽑혀 타이틀로 잡지에 얼굴이 실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외부에서 적용하는 기준은 이렇듯 상대적인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나를 수용하고 정의하는 자세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소아정신 의사인 본인과 가족이 느끼기에도 중한 집중력 부족 과다행동장애가 있었다. 요리하다가 가스불을 끄지 않고 쉬거나, 차고 문을 열어둔 채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 나아가 운전하다가 딴생각에 잠겨 접촉사고를 낸 경험도 있었다. 남편은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러나 본인이 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깨끗이 포기하고 잘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삶을 살아온 그녀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바꾸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억지로 결점을 고치기보다는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대안을 찾았다. 주요한 행사를 잊지 않는 알람을 설치하고, 자동으로 꺼지는 인덕션을 설치했다. 또한, 차고에는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타이머를 설치했다.
자신에게 버거운 일들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치기보다는 타인의 손이나 현대 과학기술에 맡기고, 잘하는 부분을 발전시키기 위한 시간을 투자했다. 결점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한가, 장점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적일까? 하는 질문에 답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타인의 말에 스스로를 정의하거나 바꾸지 않고 나와 주변이 불편하지 않도록 대안을 찾는 것은 건강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유쾌하고 똑똑한 그녀도 자신이 생각한 목적지를 계획하고 도착하는 일은 어려웠다. 모든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에는 가능성과 위험성이 공존하며, 미래에 일어날 사건은 예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병으로 막막한 하루를 보내며 그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라면,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말한다.
자기실현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옳고 그름을 분간할 줄 알며, 문제의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고, 과정 중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건강한 관계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마음을 따라 자기실현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미션을 클리어하며 마음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실현의 끝에서 때론 인간은 허무를 느끼기도 한다. 자기실현의 종착지는 기술이 발전하는 이상 끝없이 이어지며, 인간의 에너지는 점점 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실현을 넘어 '자기 초월'을 실현하는 사람은 다르다. 이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따듯한 손을 내밀게 한다. 이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때는 불가능한 더불어 살아가는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타인을 위한 길이 결국은 나를 위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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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나의 문제를 꺼내고 나누기에 일체 불편함이 없어 이것이 순전한 내 솔직함이라 여기던 나날이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나누어도 될만한 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 인해 나에게 크고 작은 문제를 나눠준 지인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골몰한 생각에 깊이 잠기는 타이밍들을 더 잘 흘려보내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책이 그러한 시작점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울고 웃으며 단 이틀 만에 얇지 않은 책을 완독 한 후 느낀 점은 '시원함'과 '멀었다'는 점이었다. 인내가 부족하여 늘 해결책에 당도하길 갈망하는 나에게 ‘자기초월'이란 개념은 아직 낯설었다. 나 자신의 안녕을 바삐 쫓는 나에게 '초월하여 타인을 위하는 길'은 머릿속의 결심일 뿐 손내밀기엔 조금 먼 단계로 느껴졌다.
그러나 작가의 나날을 눈으로 따라오며 그녀의 시간 속에 깊이 함께하다 보니 '흘려보냄'에서의 가장 필요한 것은, '수용'과 '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해결을 찾기에 앞서 주어신 것에 '감사'할 때 조금은 더 편안하게 주어진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문제 앞에 원인과 분석 그리고 해결을 기계처럼 쫓는 나에게 수용과 감사를 더하는 하루들이 쌓여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