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배변훈련: 뒷처리는 스스로!

마음놀 칼럼

by 마음놀

몇 년 전부터 ‘아이의 감정을 읽어줘야 한다’가 유행처럼 번졌다. 본래 취지는 감정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것인데 왜곡되어서 자녀의 감정을 신봉하기에 이르렀다.

“그랬구나, 우리 땡땡이가 화가 났구나. 엄마가 어떻게 해결해줄까?”

감정 읽어주기는 자기 감정을 잘 모르는 시기까지만 해야 한다. 대신 해결 해주려는 것은 아이에게 영원히 기저귀를 채우겠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그러니까 어서 해결하지 못해?)”

자녀 관련해 불만을 제기할 때 요즘 엄마들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남편이 화난 것에 대해 마치 일어나선 안 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말한다.


감정은 오랜 기간 억압당했다. 동양권에서는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보다 공동체에 조화롭게 스며드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서양권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우월하고 이상적인 것으로, 감정을 열등하고 미숙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다가 감정을 억압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이트가 억압된 감정과 신체 증상의 관계를 주장하면서 감정은 억압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재조정되었다. 이른바 ‘감정 해방 주의’이다.


지금은? 감정이 곧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감정만능주의 시대가 되었다. 감정이 왕좌에 앉아서 세상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억압당하며 자란 부모 세대가 자녀들의 감정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자신의 서러움을 푸는 것이다. 자녀가 부정 정서를 느끼면 교육청에 민원을 수십 개 넣기도 한다. 우리 아이 기분 상해 죄, 내 기분 상해죄가 명분이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누군가가 자기감정을 대신 정의 내리고, 처리해주고, 풀릴 때까지 달래줘야만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적절한 시기까지만 기저귀를 채웠다가 차츰 배변 훈련을 시켜서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고 다루도록 독립시켜야 하는데 여전히 똥오줌을 스스로 못 가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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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어른도 옷에다가 그냥 감정을 줄줄 싸버리고는

“누가 날 화나게 했어!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 똥을 치워야 해!”하며 자기 감정의 책임을 타인에게 미룬다. 그럴 때는,

“아무도 널 화나게 할 수 없어. 네 몸에서 화가 난 거야.”라고 책임을 돌려줘야 한다.


이 문제는 수동태를 사용하는 우리의 언어 표현 습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수동태는 주어가 행위를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대상이 되는 문장 형태이다. 즉, 행위 주체가 상대방이고 나는 행위를 당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아래의 예문을 소리 내어 읽어보며 어떤 느낌이 드는지 살펴보자. 같은 상황을 수동태로 표현한 문장, 능동태로 표현한 문장 두 가지이다.


“네가 날 소리 지르게 만들었잖아!”(X)

“네가 날카롭게 말하는 걸 듣자니 내가 화가 난다”(O)


“너는 왜 나를 답답해 미치도록 하는 거야?”(X)

“네가 느리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내가 답답하다”(O)


수동태로 말할 때는 가벼운 느낌이 든다.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미루니 홀가분하고 상쾌하고 편리한가? 그러나 그 대가는 몹시 크다. 당신의 자율성과 품위를 상실하게 된다. 똥오줌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날이 오는 것을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 자기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오는 것에 대해 굉장한 공포감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런 상황 또한 수용하며 긍정하는 것이 성숙해지는 길이겠지만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똥을 싸고 누군가 처리해 줄 사람을 두리번거리며 찾는 꼴이다.


능동태로 말할 때는 묵직한 느낌이 든다. 내 감정과 행동이 나라는 느낌이 선명하다. 누구도 당신을 소리지르게 만들 수 없다. 당신이 소리 지르기로 선택하고 실천한 것이다. 누구도 답답하게 만들 수 없다. 답답한 감정은 당신의 몸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단, 타인이 의도를 가지고 당신을 비난하거나 공격해서 당신이 상처 입었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극단적인 상담기법에서는 그것까지도 내가 상처 입기로 선택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감정 기저귀를 아직까지도 떼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배변 훈련을 해야 한다.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긍정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기를 연습하면 된다. 자신의 감정을 능동태로 표현하다보면 품위 있게 화장실에 가서 똥을 누고 뒤처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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