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주회와 공황증상

심리상담사의 사생활

by 마음놀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여름에는 햇님이 쨍쨍했기에 상담소는 비수기라고 할 만 했습니다.

앉아서 글 쓰는 재미를 누릴만큼 일주일에 2~3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상담일이 많아졌습니다. 또 어쩌다보니 합창곡의 가사를 몇개 쓰는 일도 있었고,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며 가을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12월 연주회 준비로 가장 바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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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6학년 때 방과후 플루트 반을 등록해주시고 야마하 481 플루트를 사 주셨습니다. 이후에는 플루트 연주하기에 금전이 더 들진 않았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더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플루트를 케이스에 가둬두고 25년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불현듯 플루트 합주단에 다니면서 플루트 연주가 내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플루트 연주하지 않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지? 할 정도이지요.


<혼자서 플루트 연주하기의 좋은점>

1. 플루트 연주하기는 훌륭한 유산소 운동이다.

2. 연주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감상이다. 사랑하는 곡을 연주하는 것은 황홀한 감상법이다.

3. 가르치거나 혼내는 레슨 선생님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홀가분하다.

4. 유튜브에 훌륭한 마스터클래스를 공짜로 들을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과외 선생님을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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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의 아침의 노래, 포레의 시칠리안느, 그라나도스의 안달루시아,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어쿠스틱 카페의 라스트카니발, 볼콤의 우아한 유령 등등, 연주회를 위해 독주 5곡, 이중주 2곡, 3중주 2곡을 준비하였습니다.


곡을 준비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떤 곡에게 한눈에 반한다.

2. 곡에 대해 알아가며 사랑이 깊어진다.

3. 다른 연주자들은 이 곡과 어떻게 해석했는지 들어본다(국내외 연주 200곡 정도)

4. 반주자 오디션을 본다. 유튜브에 올라온 반주 동영상과 각각 협연하며 우리가 감수성과 해석이 잘 맞는지 따져본다. 이 오디션은 매우 험악하고 엄중하게 이루어진다. 물론 유튜버들은 자기가 오디션에 참가했는지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마야라는 분이 템포나 쪼가 나와 잘 맞아 자주 협연한다. 그 분은 모르시겠지만ㅋㅋㅋ

5. 연습, 또 연습이다. 안되는 것은 없다. 될때 까지 해야지. 한 마디에 100번씩 연습하면 된다.


이렇게 혼자놀기의 달인수준으로 혹독하게 준비하던 중, 연주회를 일주일 전부터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난생 처음 공황 증상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느낌을 실제로 경험하니 너무 괴로웠고, 공황증상으로 괴로워하셨던 내담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먹고, 많이 자고 컨디션 관리에 집중했습니다.


내 생각에 공황증상이 발생한 이유는, 물론 체력 소진 문제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너무 많은 감정을 느껴서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보칼리제를 연습할때마다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이 곡을 연주하면 말미에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울증이 심했던 라흐마니노프의 감정에 이입되어서 나 또한 우울과 상실감, 슬픔을 느꼈던 것이지요.


상담자는 내담자의 감정에 공감하되 이입하지 않습니다. 너와 나의 감정과 경험이 구분되기에 상담자가 위험에 처하지 않지요. 그러나 연주는 다릅니다. 그 곡 감정이 곧 내 감정이 됩니다. 보칼리제의 흐느낌이 내 흐느낌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연주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연주회를 마치고 지금 몰두하는 곡은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 사장조입니다. 경조증 느낌이 낭낭해서 보칼리제의 우울증을 상쇄시키고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할 때 시든 장미가 되었다면 요즘은 모차르트를 연습할 때 참새가 되어 와! 신난다! 와! 재밌다! 합니다. 메트로놈을 켜고 호들갑 떨며..


앞으로 다시 꾸준히 블로그 글을 발행하려고 합니다.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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