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님, 저보다 오래 사세요!

심리상담사의 사생활

by 마음놀

상담자로서 내 경력과 내담자로서 내 경력의 길이는 같고, 당연히 지금도 매주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자가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윤리적인 믿음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선 내가 상담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상담자와 내담자 역할 중 어느 편을 더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두 역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하자면,


상담자 역할:

재미, 신남, 보람, 행복감, 성취감, 유능감, 돈을 번다


내담자 역할:

재미, 신남, 편안함, 안정감, 돈을 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나의 첫 번째 상담자는 융 분석가였다. 융 분석적 상담의 매체는 꿈이다. 일주일간 꿈을 기록해서 가져가면 융 분석가와 함께 분석한다. 꿈 분석은 인류 보편적인 상징과 내담자 개인적인 상징의 의미를 알아내어 꿈이 내담자의 실제 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내는 흥미로운 과정이다.

어릴 때 나는 각 나라의 민담에서 공통적 서사, 상징이 있다는 점이 무척 신기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콩쥐팥쥐, 베트남의 탐과 까미, 프랑스의 신데렐라, 러시아의 바실리사 등은 모두 계모나 자매의 학대를 받는 소녀가 잃어버린 신발을 통해 왕자와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수수께끼를 설명하는 것이 융의 분석심리학이었다.

꿈 분석을 받은 경험은 지금 내가 내담자의 꿈을 다룰 때 무척 도움이 된다. 꿈은 당신의 무의식이 매일 보내오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 몇 명의 상담자를 거쳤다. 어떤 상담자로부터 큰 상처를 받아서 몇 년간 회복이 어려운 적도 있었다. 또 어떤 상담자를 통해서는 종교적인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만나는 상담 선생님은 너무너무 좋아서 우리 상담 선생님이 나보다 오래 사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보다 오래 살길 바라는 사람은 우리 상담 선생님이랑 마동석 배우이다.

힐링이 필요할 때는 영화 <범죄도시>를 본다. 아! 범죄도시가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처음부터 볼 때도 있지만 좋아하는 부분만 반복해서 돌려보기 때문에 몇 번 봤는지 알 수 없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007 시리즈처럼 배우가 바뀌더라도 영원히 이어지면 좋겠지만 마동석 배우가 없는 범죄도시를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쪼록 마동석 배우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만을 바란다(울 엄마는 ‘마동석이 니 오빠냐 삼촌이냐’, 하며 어이없어함).

상담선생님과 마동석 배우가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다시, 나의 내담자 경험으로 돌아와서!

나는 여전히 매주 상담에 다니는데 뭐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상담 초반에는 여러 문제들을 다루었지만 이미 몇 년 전에 해결하였다.


이제 상담소 의자에 앉아서 내가 하는 첫마디는 “와! 선생님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하고요, 모든 것이 이대로만 지속되면 좋겠고요. 제 인생 구석구석 모두 마음에 들고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더 바라는 것은 없어요. 지금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좋거든요”이다.


그러고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 그 어디에도 절대로 할 수 없는 말들을 마구마구 퍼붓는다.

“쌤쌤! <000>이란 드라마를 보는 바람에 제가 너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걸 어디서 보상받죠? 그 드라마 주제 의식이 대체 뭘까요? 아기가 소중하다? 아기가 왜 소중하죠? 아기인 게 벼슬인가요? 아님, 스윗 영포티 입진보의 대 모험인가요? 네? 뭐냐고요! 개연성은 박살 나, 캐릭터는 다 붕괴돼. 그 캐릭터가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을 막 한다니까요? 말이 돼요? 제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잖아요. 저는 세종대왕이 오토바이를 타도 그 세계관에 질서와 개연성이 있으면 오케이라니까요? 아 참. 제가 운전하고 오는 길에 완전 어이없는 오토바이가 있었어요. 그치만 제가 확 들이받지 않았으니까 저 너무 훌륭하죠? 칭찬 부탁드릴게요.”

상담 선생님이 말할 틈도 거의 주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마구마구 한 후에 만족한 얼굴로 집에 간다. 몇 년째 이런 상태이니 어느 날은 선생님이 물으셨다.


“우리는 왜 여전히, 몇 년째 이 상담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요? 잘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 일단 제 솔직한(끔찍한)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줄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듣더라도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해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나 의견을 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오직 선생님만 제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나 의견을 말씀하실 수 있거든요. 이 상담이 저를 지탱하고 있어요. 선생님, 저보다 오래 사세요. 아프지 마시고요. 제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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