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놀 칼럼
“불안을 없애주세요.”
“우울을 극복하고 싶어요.”
“저는 분노조절장애인데(의사 진단 아님. 보통 자체 진단을 내리심ㅠㅠ) 고쳐주세요”
“저는 혼란형 애착인데 안정형 애착으로 바꾸고 싶어요.”
첫 상담에서 듣는 주 호소는 대개 이러한 형태이다. 그 말 속에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해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DSM-5를 보고 오신 분, AI에게 진단을 받고 오신 분, 주변인의 진단(의사 아님)이나 배우자의 핀잔을 듣고 오신 분도 있다.
서로 달라보이는 주 호소들을 종합해보자면 ‘부정 정서를 안 느끼고 싶어요’라고 한 줄 요약할 수 있다.
동아시아권 문화에서 부정 정서는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개인의 감정보다는 사회적 조화와 질서를 우선시하는 문화적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 슬픔, 욕망은 '사사로운 감정'이라 부르며 절제시키고 공적인 덕목에 맞게 표현하기를 가르친다. 이것이 왜곡되고 강화되어 감정 표현을 금지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여자아이가 너무 크게 웃는다’고 혼난 적이 있다.
남자아이들은 평생 세 번의 울 기회만 가질 수 있었다.
어른은 어린이 앞에서 찬물도 못 마시는데 그건 어린이가 어른의 거울이라서다.
"울지 마, 웃지 마, 화내지 마, 아니다 싶어도 어른에게 일단 ‘네’, 하고 대답해"
한 마디로, ‘감정 표현하지 마라’.
감정은 몸의 생리적 현상이다. 자극이 있고, 편도체와 변연계에서 신호가 보내지면 신체 반응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슬픔이 발생하면 눈물이 흐르는데, 그때 감정이 해소되며 몸의 균형을 되찾는다. 오줌이 마려우면 배출해야 체내 균형이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눈물을 참는 것은 오줌을 억지로 참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정에 대해 배운 적 없는 우리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 이름을 모르고, 그것에 대해 표현하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는다.
어떤 행사에서 참가자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인터뷰어가 '지금 기분 어떠세요?' 묻자 인터뷰이들은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듯 모두 이렇게 말하더라.
"장난 아니에요"
"장난 아니에요"
"와~ 진짜 장난이 아닌데요?"
장난이 아니라는 말(자매품: 대박)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할만한 다채로운 어휘를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감정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경우도 많다. 부정정서가 불쾌하니까 자꾸 외면하다보니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무 불안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신체 감각이나 몸의 상태를 명료화해보면 의외로 슬픔, 수치심, 외로움, 우울인 경우가 많다. 특히 쌍둥이처럼 닮은 감정은 자세히 봐야 구분할 수 있다.
기분이 어때? 하면 ‘아임 파인 땡큐’ 구구단처럼 외우지 말고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자세히 관찰하고 따라가고 느끼고 말을 걸어야 알 수 있다.
'내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가빠지고 뱃 속이 불편하고 속이 울렁거리고 손 발이 차가워진다.'
이 감정에게 입이 있어서 말을 한다면?
'미칠 것 같아' 라고 말할 것 같다. 무엇때문에 미칠것같은지 묻는다면?
'들킬까봐 두려워서'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감정의 이름은 들킬까봐 두려움이다. 무엇을 들킬까봐 두려운지, 그것은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다시 따라가보는 과정을 상담 중에 가질 수 있다.
민담이나 신화 속에서 이런 원리가 상징적으로 담겨있다. 그림형제의 독일 민담 하나를 살펴보자.
흉측하게 생긴 난쟁이 요술쟁이가 왕비의 아기를 빼앗으며 ‘내 이름을 3일 안에 알아맞히면 아이를 살려주겠다’고 한다. 너무 흉물스러워 얼굴을 돌릴 정도인 난쟁이 이름 따위 무시하고 피하고 싶었지만 3일 밤낮을 쫓아다녀 그 이름을 알아내었고 ‘럼펠슈틸츠헨!’ 부르는 순간 요술쟁이는 땅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악령, 요정, 동물의 참된 이름을 알아내 부르면 그들의 신비로운 마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름을 모를 때는 그것들로부터 고통을 받는다. 싸워도 이길 수 없고, 무시하려해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감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무시할수록. 없애고 싶고, 극복하고 싶고, 고치고 싶고 바꾸고 싶을수록 그 감정은 마력이 생긴다. 일상을 침범하고 훼방을 놓다가 아기로 상징되는 당신의 가장 소중한것까지 빼앗아가려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당신의 아름다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