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놀 칼럼
우리는 누구나 유능한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안에 살고 싶어 한다. 그 안은 안전하고 행복하며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다.
유능한 지휘자는 공평하다. 그는 모든 악기를 사랑한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이라서 사랑하고 첼로는 첼로라서 사랑한다. 소리가 크다고 더 예뻐하거나 맡은 부분이 적다고 경시하지 않는다.
“엄마는 내가 좋아 첼로가 좋아? 누가 더 좋아?” 백날 물어봐도 공평한 지휘자는 웃으신다.
“나는 네가 너무 좋단다, 너는 그것만 알면 돼.”
알아서 잘하는 장녀를 살림 밑천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사고 치는 아이 꽁무니를 쫓아다니지도 않는다. 누구도 공평한 지휘자를 조종할 수 없다. 그를 기쁘게 하려고 애를 써도 그런 수가 통하지 않는 것이 그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 마음 속으로는 누구를 더 선호할지 몰라도 행동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공평한 지휘자는 모두의 목소리를 다 듣고 있다. 누가 나서서 말할 차례인지 기억하고 있으며 안내하고 허락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악기들의 작은 속삭임, 숨소리까지도 귀 기울인다.
유능한 지휘자는 엄격하다. 그가 엄격한 것은 우리를 억압하고 찍어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적절한 규칙을 제시하고 모두가 잘 지키는지 관심을 둔다. 너무 피곤하니 오늘만은 대충 넘어가고 싶어서 플루트가 규칙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나대더라도 그냥 묵인하는 그런 일은 없다. 엄격한 지휘자는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플루트를 진정시킬 수 있다.
엄격한 것과 무서운 것을 구분하고 싶다. 훈육과 혼내기가 다른 것처럼, 또한 권위 있음과 권위적임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엄격한 것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고 일관적이다. 무서운 것은 모호하고 예측하기 어렵고 가변적이다(그래서 매혹적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설명하겠다). 지휘자가 힐끗 던지는 눈길에 플루트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져서 고쳐 앉지만 동시에 안정감을 느낀다. 지휘자는 자신의 센 힘으로 우리를 찌르는 것이 아니라 안고 버티기 때문이다.
유능한 지휘자는 용기 있고 솔직하다. 단원들이 싫어할까 두려워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 체면이 깎일까 우기지도 않는다. 용기 있음은 겁 없음이나 도전정신과 다르다. 용기 있음은 자신의 취약한 면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아,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놓쳤습니다. 다시 한번 연주해줄 수 있나요?”
그는 문제를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함께 다룬다. 오케스트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은 이런 오케스트라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마음껏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답게 살면 된다. 바이올린이 첼로를 부러워하거나, 그래서 첼로 흉내를 내거나 하는 일은 없다. 바이올린은 매일 밤 자신이 바이올린이라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지휘자는 악기 본연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그 악기가 가장 나은 버전의 소리를 내도록, 또한 전체 흐름에서 그 소리가 위치할 가장 적절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한다. 악보와 지휘자를 신뢰하며,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우리는 거기서 살고 싶다.
지휘자는 우리의 자아이다. 자아는 우리 몸에서 시시각각 발생하는 생각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한편 외부 상황을 파악하여 적응적인 행동을 하도록 한다.
불안한 자아 상태는 비관적인 지휘자이다. 그는 끊임없이 주저하고 도무지 곡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며 연주 중에도 자꾸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울한 자아 상태는 무기력한 지휘자이다. 그는 자기혐오와 수치심에 사로잡혀있으며 연주에 몰두하지 못하고 어느 부분을 놓치거나 중간에 지휘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건강한 자아는 유능한 지휘자이다. 그는 삶을 사랑하고, 맞닥뜨리는 모든 다양한 상황과 문제를 긍정한다. 가진 것을 좋아하고 취약함을 허락한다. 호기심과 열정의 눈빛으로 매 순간을 맛본다.
당신은 어떤 오케스트라에 살고 있는가? 당신의 지휘자가 건강하고,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안에 살면서 당신 말고는 누구도 연주할 수 없는 그런 연주를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