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놀 칼럼
당신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 자기 자신으로 살기이다.
태어날 때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었다. 알에서 깨어나 바다로 향하는 아기거북이처럼, 젖은 흙을 밀어내고 나온 새싹처럼, 젖 냄새를 찾아 품으로 파고드는 어린 강아지처럼 당신 또한 자기 자신이었다.
이후 다른 모든 생명체는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지만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방해받기 시작한다.
첫 번째로, 타인이 당신을 규정한다.
“너는 똑똑한 아이구나.”
“너는 겁이 많구나.”
“네 아버지를 꼭 닮았어.”
“넌 이기적인 거짓말쟁이야.”
수없이 들리는 당신에 대한 타인의 감상 중 그 어느 것도 당신 자체가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의 머릿속에 잠깐 떠올랐다가 바람처럼 지나가는 가벼운 문장일 뿐이지만 어리고 취약한 당신이 듣고서는 아주 중요한 감정이 발생한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당신의 두려움은 타인의 가볍기 그지없는 감상평을 단단한 틀로 성형한다.
두 번째로, 사회 시스템과 문화가 당신을 대신해 결정한다.
“인간은 누구나 고귀한 존재이며 해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우는 거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살아야 한다.”
“더욱 많은 자원을 가지고 남들이 못하는 소비를 하는 것이 성공적이 삶이야.”
옳다 그르다, 된다 안된다, 이러쿵저러쿵 시끌시끌하지만 이 중 그 어느 것도 진리라는 보장이 없다. 소위 ‘인간답다고 부르는 모습’처럼 산지 정말 얼마 안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하루라고 치면 자정부터 아침과 낮을 지나 밤이 깊어질 때까지 다른 동물들과 다름없이 사냥하고 채집하며 살았다. 비로소 밤 11시 12분에 이르러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지금으로부터 2분전부터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디지털 중심 사회는 30초 전에 시작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진리인 듯 속이려 하는가? 하지만 지금 시대에 이 나라에 태어난 이상 사회 시스템과 문화가 씌우는 틀 안에서 적응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최종적으로, 비극적이게도 이제는 당신이 스스로 틀 안에 머물게 된다.
타인이 규정한 대로 살기도 하고 규정한 것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간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말을 듣고서는 아버지처럼 살아가려고 애쓰거나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 두 행동이 달라 보이지만 둘 다 틀 안에 머무는 상태이긴 마찬가지이다.
사회 시스템과 문화는 온갖 전략들을 동원해 틀을 제시한다. 만약 당신이 집에서 누워있으면 여행예능프로그램, 광고, SNS, 미디어에 나오는 자기 계발 강사들이 당신이 몸을 일으켜 뭔가 하도록, 특히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소비한 후에는 다시 뼈 빠지도록 일을 해서 자원을 창출하도록 한다.
이러한 틀이 모두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틀에 맞추어서 살아가다 보면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두려워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어젯밤에 꾼 꿈에서 이 주제는 상징을 통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타인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타서 답답함을 느끼는 꿈은 당신이 삶의 주인으로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이다.
인류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민담에서도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라푼첼 민담.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을 잊은 채 높은 탑에 갇혀 나가길 두려워하던 라푼첼은 결국 어느 날 그 틀을 벗어나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이후 자신의 삶을 산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란 무엇인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간직하고 가치관, 욕구, 감정을 그때그때 알아차리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상담소에 오는 모든 사람들의 진짜 상담 주제는 ‘자기 자신으로 살기’이다. 상담사는 무엇이 그들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역할, 관계, 타인의 기대, 종교적인 신념일 수도 있다. 수치심, 열등감과 같은 부정정서들인 경우도 많다. 장애물의 종류가 다양해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그 진짜 이름은 ‘두려움’이다.
거의 모든 종교의 핵심 주제 중 하나가 이 ‘두려움’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표현은 유대교와 기독교 성경, 불교 경전,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 이슬람의 꾸란, 그리고 무수히 많은 원시 신화들과 민간신앙, 민담, 꿈, 디즈니 애니메이션, 재패니메이션, 각종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 여전히 있다.
‘두려워 말라’는 사실 ‘두려움이 너 자신이 되는 것을 방해하게 두지 말라’의 축약이다.
두려움을 다 없애서 사라지게 할 순 없다. 라푼첼이 두려움 없이 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두려움을 생생히 느끼면서도 여전히 이 순간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