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내 삶을 파괴하는 효과적 방법

마음놀 칼럼

by 마음놀

비교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특히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한다.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비교는 당신의 삶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지옥에서 찾아온 악당이다.

자녀와의 관계를 파괴하고 싶다면 옆집 아이와 비교하는 말을 하면 된다.

배우자와의 관계를 파괴하고 싶다면 다른 집 사람과 비교하는 말을 하면 된다.

자신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싶다면 내 특성과 행동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된다.


당신이 아주 어릴 때는 자신의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아기들이 그리는 엄마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림을 보면 우리 엄마가 너무나 예쁘고 똑똑하고, 유능하고 부자인 게 명백하다. 아기의 세상에는 우리 엄마만 있고 옆집 엄마에게는 관심이 없다.


조금 큰 꼬마들의 삶에는 슬슬 비교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우리 아빠가 제일 힘 세!’

‘아니야, 우리 아빠는 더더더 힘 세!’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가진 것을 더 좋아한다.


비교가 더 집요하게 끼어들어 삶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면 이윽고 아이들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너희 집 몇 평이야?’

‘너 여름방학 때 해외여행 가?’

이쯤 되면 이미 자신이 가진 것은 잊고 남이 가진 것들에 더 관심이 많아진다.


가상의 내담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떠올려보자.

“제 삶만 보면 나쁘지 않아요. 주부 역할에 만족하고, 우리 집에 큰 걱정거리도 없이 그럭저럭 행복해요. 그런데 SNS를 켜는 순간 내 삶이 너무 초라해져요. 어젯 밤에 어떤 집 남편은 커다란 꽃다발을 사 오고, 어떤 집 아이는 상을 받아왔지요. SNS를 보면 모든 여자들이 나보다 훨씬 엄마 노릇, 아내 노릇을 잘하는 것 같아요. 우리 집 남편은 센스도 없고 우리 애는 평범한데다가 나는 요리도 못하고 다정하지도 않아요.”

SNS가 어떤 요물이기에 켜는 순간 이런 재앙이 일어나는 것일까? 비교를 유발하는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테오도르 제리코 <시기심에 사로잡힌 자(1820)>

비교는 당신의 아름다운 삶에 깃든 고유하고 다채로운 빛깔에 재를 뿌린다. 색은 바래고 빛은 사라진다. 당신이 가진 것들은 길바닥에 뒹구는 먼지투성이 그릇처럼 값어치 없어 보인다.


수치화와 비교하기는 세상에 유용하다. 시계, 화폐, 길이, 넓이, 등 수치를 재는 도구들 덕분에 세상은 규격화되어 정돈되어있다. 문제는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까지 비교하려는 습관에 있다.


진실로 이 세상은 서로 비교할 수 없게끔 지어져 있다. 코스모스의 꽃잎은 8장이고, 벚꽃의 꽃잎은 5장이다. 그럼 코스모스와 벚꽃 중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가? 더 세련되었는가? 더 매력적인가? 수치화할 수도, 비교할 수 없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묻는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묻는다. ‘제가 예뻐요, 동생이 예뻐요?’

‘둘 다 좋아요’, ‘둘 다 예쁘지’는 성에 차지 않는다. 미세하게라도 더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재차 묻는다.


이 질문이 어리석은 이유는 마치 ‘사랑을 수치화하고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류이다.

또한 비교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 또한 오류이다. 모든 다른 기질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 비교를 하려면 같은 트랙을 달려야하는데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트랙을 달리고 있다.


오!오! 그렇다면 혹시 이런 참신한 방법은 어떨까?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지. 뒷집 사고뭉치 아이보다는 그래도 우리 아이가 낫지. 마누라 패는 남자도 있는데 우리 남편은 그보다는 낫지. 삶이 파괴되기보다 오히려 더 좋아보이는데요?

타인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미스터 샤덴프로이데/ 자기도 벌 서는 중인데도 형제의 눈물이 위안이 되는 아기

글쎄, 이건 괜찮은가? 좀 헷갈리려고 하는데 우리가 이럴 줄 알고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가 일찍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한 이들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만 행복해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비교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온다.”


비교하지 않으면 삶이 영 허전할 것 같은가?

비교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느냐면 드디어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만 남는다.

‘살림 유튜버 누구는 조미료까지 직접 갈고 말려서 만드는데, 나는 방부제 투성이를 가족 입에 쑤셔넣는 한심한 주부야.’

하고 비교하는 대신

‘나는 반찬가게에서 산 마른반찬과 직접 끓인 국, 인스턴트 미니돈까스로 저녁상을 차린다’

하고 생각을 끝내도 된다는 말이다. 거기까지이다.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 모두 그대로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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