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부여한 의미

by Mind Listener


한 때 내게 머물렀던, 지금은 지나간 관계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참 쓰리다.


그 관계를 떠올리면 상대가 줘서 받았던 상처도, 누구도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받은 상처도

모두 함께 떠올라서 그런 걸까?


눈빛, 말투, 행동에서 드러나는 아주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나도 모르게 캐치할 만큼

섬세하고 민감한, 또 다른 말로 예민한 성격적인 특성으로 인해

상대방의 작은 변화에도 마음이 철렁해서 오만가지 시나리오를 쓰던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서로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준, 친밀해진 모든 관계 속에서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서운하고, 그 사람은 나 때문에 피곤하다.'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고

상대가 누구든 늘 서운한 게 많고 쉽게 상처받는 감성적인 사람의 포지션에 놓이는 내가 싫었어.


그래서 그런 민감하고 예민한 성격이 나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 할 수 있는 무던한 사람이 되고자 성격을 바꿔보려고 애를 썼었는데

도무지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

무던해진 척, 신경 쓰지 않는 척은 할 수 있었지만 진짜 마음이 무던해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더라.


근데 어느 순간부터 어쩌면 그동안 사람과의 관계로 힘들었던 건

민감하고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 때문이 아니라

내가 <관계에 부여한 의미>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너라면.. 적어도 우리 관계에서는..' 하는 말들로

관계에 덕지덕지 붙여놓았던 의미들이, 잔뜩 실어놓았던 부담감들이

결국 내게 너무도 애틋했던, 그래서 유지하고 싶었던 관계를 지속되게 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냥 그 순간의 마음에 충실하게, 가볍고 편안하지만 진실되게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뭐가 그렇게 늘 진지하고 무거웠을까?

진지하고 무거운 관계를 진실한 관계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묵직한 의미가 부여된 관계가 아니라면 부질없다고 여겼던 건 아닐까.


관계에 부여한 의미가 채워지지 않으면, 관계 자체가 잘못 형성된 것처럼 느껴져서 속상했고

'내가 부여한 이 관계의 의미를 같이 완성시켜 줘!' 하는 내면의 생떼를 부리며 초라해졌고

'나는 우리의 관계에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너도 동참해 줘!' 애원하며 애가 달았었지.


나와 너, 우리가 된 관계의 의미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은밀하게 부여해 놓은 의미를

상대방이 발맞춰 충족시켜 주는 것으로 생길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야.


나는.. 내 곁의 많은 관계들에게 너무 무겁고도 많은 의미를 부여했고, 그래서 많이 아팠어.


이미 시작부터 의미가 부여된 관계가 아닌,

함께 보내는 순간들을 통해 저절로 생겨난 의미를 지니게 된 관계.

나 혼자 동의한 의미가 아닌, 상대도 함께 동의한 의미를 공유하게 된 관계.


그런 관계를 맺어가고 그 안에서도 충분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관계를 통해 받은 상처를 민감하고, 예민하고, 피곤한 성격 탓으로 돌리지 않을 것 같아.

작가의 이전글아픈 엄마의 딸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