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탐색하기
내가 세 살이 되던 해, 엄마는 B형 간염을 진단받았고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엄마는 간경화 환자가 되었다.
많이 어렸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시절 그 어린아이가 품었던 엄마를 향한 감정은 서른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온몸과 마음에 강렬하게 새겨져 있다.
'엄마가 죽을까 봐 두려워..'
복수가 차올라 볼록해진 배와, 황달기로 노랗게 변해버린 몸을 갖게 된 서른한 살이었던
엄마의 꿈은 나와 세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이라도 사는 것이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친할머니에게 우리를 맡기고 요양을 하러 외갓집으로 떠났었던 엄마.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을 때, 대문에서 우리를 와락 끌어안던 엄마의 품을 기억한다.
다시는 이 품에 안기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과,
다시 안길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뒤섞인 복잡 미묘했던 내 마음도 기억난다.
자식에게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다.
자신의 모든 것들이 부모에게 달려있으니.. 말 그대로 자식에게 부모는 세상 전부이다.
생명의 유한함을 맞닥트린 그녀가, 이 세상에 엄마 없이 남겨질지도 모를 생때같은 자식들을
바라보며 품었을 불안과 두려움은 아마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나는 늘 두려웠다.
'엄마가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줄까?, 엄마가 죽으면 나는 어쩌지?' 불안했으니까.
아이의 전부이자 세상이었던 엄마는 아팠고.. 아이는 불안했다.
아이 입장에서 불안한 게 너무도 당연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불안을 가슴에 품은 채 어른이 되었다.
나는 영원하지 못한 것, 유한한 것에 대해 남들보다 더 유난히 큰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무슨 짓을 해도 지금 이대로 일 수가 없는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내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건 얼마나 행복한지와는 상관없이 지나가버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내 곁에 영원하지 못할 것을, 이 순간이 영원하지 못할 것을 알게 될수록.. 불안은 커졌다.
사랑할수록 불안해지고, 행복할수록 불안해지는. 삶은 나에게 '불안의 연속선'이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네 가족이 식탁에 모여 밥을 먹을 때면 내 안에 항상 떠오르던 문장이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면 어쩌지?
아빠, 엄마, 나, 동생. 우리 네 사람이 함께 밥을 먹는 게 오늘 이 식사가 마지막이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렇게 단란한 가족식사를 하며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싫었고,
한편으론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 정말 우리가 그렇게 될까 봐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애를 썼다.
나라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핵심적인 감정, 그 감정의 기원은 대부분 원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언어화되기 이전에(대략 3세)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의 사고와 정서, 행동을 지배하는 <핵심감정>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심리학자가 있을 만큼
주양육자인 엄마의 감정은 아이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나의 핵심감정인 불안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다뤄보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강화되는 불안에 압도됐고, 이제는 불안의 뿌리부터 제대로 아는 것을 시작으로
불안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맺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