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탐색하기
6년 전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나는 희귀 난치병인 강직성척추염 환자가 되었다.
7년 동안 지속되었던 알 수 없는 통증들과 마비증세의 원인에 대한 답을 찾은 날이자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완치가 어려운 병명을 진단받은 환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날.
통증을 호소하며 이 병원, 저 병원을 다 다녀보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날들에 이미 지쳐있었기에
차라리 아픈 이유라도 알게 되어 속 시원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
심해진 통증에 찾아간 동네 신경외과에서 x-ray 결과를 보여주시며
"빨리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강직성척추염 소견이 보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순간부터
나의 세상은 이미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강직.. 뭐?'라고 되뇌며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하고 마음을 계속 진정시켰지만
어쩌면 내 몸에 큰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게 되더라고.
병명부터 너무 무섭잖아.
강직성척추염을 검색해서 찾아보니까 척추에 염증이 생겨서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는 병이라는데
'시간이 지나서 굳어지면 아예 못 움직이게 되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어.
나는 바로 가장 큰 대학병원 류머티즘내과 진료를 예약했고
시간이 흘러 대학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마치고 마침내 결과를 듣는 날이 왔지.
그날의 모든 것들이 아직도 선명해.
의사 선생님은 마우스로 쓱쓱 스크롤을 내리며 모니터에 떠있는 결과들을 보시고
고개를 뒤로 돌리고, 일어서서 손을 내려 뻗는 등, 나의 몇 가지 신체 동작들을 지시, 관찰하신 뒤
"유전자 검사도 양성이고, 염증수치와 천장관절염의 진행상태, 통증을 호소하는 여러 증상들을 봤을 때
강직성척추염이 맞습니다."하고 진단을 내리셨어.
그 순간, 네이버와 유튜브를 다 뒤져가며 찾아본 강직성척추염 예후들이 떠오르며 손이 벌벌 떨렸어.
'내 인생에 큰일이 벌어졌구나'하는 마음이 들었거든.
근데 그 와중에도 벌벌 떨리는 손을 행여나 옆에 있던 아빠가 알아채고 아빠가 더 슬플까 봐 걱정되더라.
선생님은 강직성척추염이지만 척추 강직은 진행되지 않은 조기 발견이고,
몇 년 동안 나를 가장 괴롭고 고통스럽게 했던 엉덩이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통증과
통증과 동반되던 마치 마비된 것과 같이 움직일 수 없었던 찌릿찌릿한 증상은
강직성척추염을 확진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인 천장관절염 때문이라며..
염증은 이미 최고 단계인 grade 4까지 진행된 상태라고 말을 이어가셨어.
그래도 초기에 발견한 케이스고, 약과 주사를 통해 조절이 잘 되면 일상생활을 하며 살 수 있다는 말씀에
별일 아닌 듯 덤덤한 척 진료실 밖으로 나왔거든.
근데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대기석에 앉아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향해 "뭐래?"라고 묻는 엄마를 보는 순간..
눈물이 확 터져버렸어.
'언제 나오려나, 결과가 어떻게 나왔으려나..' 가슴을 조아리며 기다렸을 엄마를 보는 순간
그냥 눈물이 쏟아져버렸어.
참을 수도 없었고, 삼킬 수도 없었어.
스스로 어른이 됐다고 느꼈던 순간부터 엄마, 아빠 앞에서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거든?
내가 울면 엄마 아빠가 너무 슬플 것 같았고, 무엇보다 다 큰 자식이 우는 것만큼
부모 가슴에 못 박는 불효도 없다는 생각에 부모님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이 처음이었어.
어른이 된 내가 엄마 아빠 앞에서, 그리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공간에서 울어본 게.
대학병원에 가본사람은 알겠지만 진료실 앞은 대기하는 사람들로 진짜 가득 차있는데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들을까 봐 살필새 없이 그냥 엄마 옆에 앉아서 애처럼 꺽꺽대며 울었어.
그때 엄마는 내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고, 아빠는 앉아 우는 내 옆에 서서 내 어깨를 감싸며
"걱정하지 마. 아빠가 어떻게든 고쳐줄게. 낫게 해 줄게" 라며 아주 큰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했어.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내 등을 찬찬히 쓸어주던 엄마의 손길과
아빠의 그.. 강한 의지가 담긴, 근데 참 슬픈 목소리가 너무 강렬한 감각들로 각인돼서 내 마음에 남아있어.
그렇게 한참을 울다 챙겨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왔고
수납창구 앞에서 의자에 나란히 앉아 나를 기다리던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어.
'난 이제 평생 엄마, 아빠의 아픈 손가락이네."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늘 속 썩이던 내 꿈은 엄마, 아빠의 아픈 손가락이 되지 않는 거였거든.
왜, 집마다 꼭 아픈 손가락인 자식이 하나씩은 있다고 하잖아.
동생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내가 아픈 손가락이 되기 싫었었거든.
근데 부모에게 아픈 자식은 평생 아픈 손가락 일 테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는 사실이 참 죄송하고 슬프더라.
이렇게 나는 희귀 난치병인 강직성척추염 환자가 되었어.
그리고 27년 동안 환자의 딸로 살며 커져있던 건강과 안전, 죽음에 대한 나의 불안과 강박은
스물아홉 살의 환자가 되며 손쓸 틈 없이 더 빠른 속도로, 더 커지게 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