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주 Mar 20. 2024

지금 여기, 이걸로 충분해

방정아 <아무말 하지 않아서 좋았어>

방정아, <아무말 하지 않아서 좋았어>,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62.2X130.3cm


여자 세 명이 바닷가 방파제 위에 앉아 있다. 노란 점퍼를 입은 여자는 등을 보인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붉은 점퍼를 입은 여자는 반대편의 내륙을 바라보고 있다. 구석의 한 여자는 몸을 웅크린 채 시선을 땅으로 떨군다. 이들은 어떤 사연으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일까? 그녀들은 단순한 여행으로 이 바닷가를 찾은 것 같지는 않다. 가벼운 마실이 아님을 그녀들의 몸짓과 굳은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그림에서는 고립이나 소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들을 타고 흐르는 어지러운 실루엣들이 바다의 물결과 바람결이 되어 연결된 듯하다. 침묵을 통해 소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를 위해 온 마음이 담긴 침묵은 그 어떤 현자의 조언 보다도, 그 어떤 현실적 충고의 말 보다 지혜롭고 따뜻한 위로가 된다.  


방정아 작가(b.1968)는 작품 속에 제목을 적어두곤 한다. 작품의 오른쪽 하단에, 다른 작품에 쓰여있는 글씨보다도 작게, 마치 속삭이며 말하듯 적혀 있다. '아무말 하지 않아서 좋았어'


내 마음과 함께 흔들리는 너의 눈빛, 그 흔들림을 견디며 내 곁에 머무는 너의 마음. 

지금 여기, 이걸로 충분해. 


매거진의 이전글 좀 흔들리면 어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