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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Mar 15. 2024

좀 흔들리면 어때

방정아 <좀 흔들리면 어때>


방정아 <좀 흔들리면 어때>,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116.8cm,


절벽 위에서 파도를 바라본다. 수풀이 가득한 절벽 아래는 파도가 흔들리고 있다. 바다를 칠한 붓질 아래에는 절벽의 흔적이 드문드문 보이고 바다색이 아닌 주황색 빛이 불긋불긋 올라와 있다. 아크릴 물감으로 밑색을 덮으며 바다의 출렁거림을 연출한듯하다. 나의 시선은 수풀이 어지럽게 자라난 절벽 위에 서 있지만 작은 면적의 바다가 나를 향해 물결치고 있다. 찰방거리는 듯한 소리는 '내가 있어, 함께 있어, 움직이고 있어, 이렇게 우린 흐르지...'라고 속삭이며 내 마음을 고르게 한다. 절벽 쪽에 있는 돌과 나무, 풀들도 파다의 물결이 된 듯 선을 타고 흐른다. 절벽과 바다가 여러 색의 색실로 짜인 직조물처럼 하나로 연결된 것만 같다. 


"좀 흔들리면 어때. 우린 이렇게 함께 흔들리며 흐르는 걸"






최근 얼마간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다. 이미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 둔 일이지만 마음속에 묵히기만 했을 뿐 실행하지 못했다. 나는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순간을 미뤄왔다.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가능한 도전을 횟수를 아껴왔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신뢰감, 안정감으로 비쳤을지 모르겠지만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에너지를 쓰기 위한 애씀이 아닌 에너지를 참기 위한 애씀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출렁거리는 마음을 고르는 애씀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래되다 보니 출렁거림 자체를 없애려는 애씀으로, 움직이지 않고 고정시키려는 애씀으로, 불가능한 것에 집착하는 애씀이 되었다. 


나는 출렁거림을 이용하기보다는 그 출렁거림을 애써 피해왔던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다소 충동적인 편이었으나 성인이 되어 내 삶을 살아갈수록 세상으로부터 받게 되는 쓸림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난 세상의 위험으로 부터 안전하기 위해 숨어들었다. 점점 과도하게 나를 보호해 왔다. 스스로를 단속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 머물려고 했다.  


이런 회피적인 태도가 상처 입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난 후 얼마간은 일부러 사건들을 만들어 냈다. 오래 일하던 곳에 가졌던 불만과 새로운 것에 대한 바람으로 일터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진정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나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타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이별의 과정에서 나의 집착과 고통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어리석다. 이별의 과정이 있어야 문제를 선명히 바라보니 말이다. 


나의 세계는 크게 출렁거리고 있다. 기존의 앎(심리학과 미술치료)에 새로움 앎(철학)이 더해지면 내 세계는 거친 물결로 출렁거린다. 애초 얕은 개울가에 큰 물줄기가 들어와 개울이 범람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 동안 그 개울은 제법 큰 강물이 되었다. 물이 넘치면서 강물이 폭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진 것이다. 물이 넘치는 동안 뿌옇게 올라오는 진흙탕을 그대로 바라보기가 고통스러웠다. 언제나 맑아지나 언제나 맑아지나를 계속 기다렸다. 지금은 그 '언제'를 묻지 않는다. 그 언제는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가끔 내 마음이 흙탕물처럼 올라올지라도 그 마음이 곧 가라앉는다는 것을 안다. 흙탕물이 올라올 때는 심연 깊숙이 가라앉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다가 다시 맑아 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시간은 바라던 '언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아직 맑고 명료한 삶을 알지 못한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은 흔들리는 마음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두려움, 수치심, 우울함, 열등감 등의 다루기 어려운 감정들이 굽이칠 때 그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돌보아야 할 것들이 있는지 살펴주고, 반성할 일들이 있는지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찰나의 기쁨을 마음속에 잘 간직해 두는 것이다.


좀 흔들리면 어때. 물결은 흔들리며 굽이쳐간다. 생각지도 못한 어느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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